대학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각종 회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성격은 회의마다 천차만별이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다 끝나는 회의가 있는 반면 어떤 회의는 살벌한 긴장감이 회의실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살벌하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회의가 M&M 컨퍼런스이다. M&M은 'morbidity & mortality'의 약자로 심각한 합병증이 왔거나 혹은 환자가 사망한 증례를 놓고 전체 의국원이 모여 토론하는 회의이다. 무엇 때문에 환자의 경과가 나빠지게 되었는지를 분석해 보고 다음부터는 비슷한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는 두말할 나위 없이 건설적이고 발전적이다. 하지만 이런 취지가 무색하게도 M&M 컨퍼런스는 담당 전공의의 잘못을 성토하는 자리로 변질되어 버리기 일쑤인데, 특히 내가 수련받았던 병원의 내과 M&M 컨퍼런스는 전공의들의 눈물을 짜내기로 악명이 높았다. (다행히 지금 우리 과의 M&M 컨퍼런스는 전공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M&M 컨퍼런스가 살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모두가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답을 알고 나서 다시 보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미 '환자의 경과가 나빠졌다'는 '정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리뷰를 해 보면 어디든 허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응급 수술을 한 시간만 더 일찍 결정했더라면, 수술 당시 A가 아니라 B 방법을 했었더라면, 투석을 하루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식이 진행을 조금만 늦추었더라면. 그러나 환자 치료의 과정이라는 것이 한 치의 모자람이나 과함도 없이 항상 완벽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더구나 의학이란 100% 확실한 정답만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대개는 높은 확률의 선택지를 따라가게 되지만 때로는 낮은 확률일지라도 모험을 걸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답을 알고서 하는 비판은 자칫 결과론의 함정에 빠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지나고 나서 생각했을 때 후회하게 되는 일의 상당수는 지나고 난 후에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장암으로 일 년 전 복회음절제술을 받았던 60세 남자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내원 이틀 전부터 장루로 변이 나오지 않기 시작하더니 내원 전날 저녁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기본적인 혈액검사와 영상검사를 시행했고 복부 엑스레이 검사에서 장폐색 소견이 보여 복부 CT 검사를 시행했다. CT 검사에서 복회음절제술을 시행한 골반부에 소장이 유착되어 장폐색을 유발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환자의 증상이 심하지 않았고 활력징후가 정상이었으며 혈액검사 결과도 특이 소견이 없어 담당의사는 비위관(nasogastric tube)을 유지하고 금식하면서 보존적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고 환자를 병동으로 입원시켰다. 담당 의사는 나흘간의 보존적 치료에도 차도가 없자 가스트로그라핀(gastrografin)을 이용한 조영 검사를 시행했고 검사 이후에도 장폐색이 전혀 호전되지 않아 응급 수술을 시행했다. 수술 소견상 소장이 골반 내에 심하게 유착되어 있어 박리해 내고 소장을 일부 절제하고 연결하였다. 수술 일주일 후 식이 진행에 문제없이 회복되어 환자는 무사히 퇴원하였다.
자, 여기서 문제.
위 증례에서 담당 의사가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다면 찾으시오.
쉽게 풀어쓴다고 했음에도 의학용어가 많이 섞여 있어 문제가 어렵다고 느껴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시 설명해 드리겠다. 직장암으로 수술받았던 환자가 수술 자리에 장이 들러붙어서 막히는 바람에 배가 아파서 응급실로 왔다. 담당 의사는 수술이 아니라 금식 등의 보존적 치료를 선택했고 나흘이 지나도 차도가 없자 그제서야 응급 수술을 시행했다. 다행히 환자는 수술 후 좋아져서 퇴원했다.
담당 의사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래도 문제가 어려운가? 그렇다면 문제를 이렇게 바꿔보자.
직장암으로 수술받았던 환자가 장이 수술 자리에 들러붙어서 막히는 바람에 배가 아파서 응급실로 왔다. 담당 의사는 수술이 아니라 금식 등의 보존적 치료를 선택했는데 나흘째 되던 날 환자가 갑자기 다량의 구토를 하였고 두 시간 뒤 39도의 고열과 함께 수축기혈압이 70mmHg까지 떨어졌다. 담당 의사는 구토로 인한 흡인성폐렴을 의심하여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기관삽관 및 다량의 수액과 항생제, 승압제 투여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시행하였으나 환자는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이틀 뒤 결국 사망하였다.
자, 이제는 문제가 쉬워졌다. 환자가 사망하였으니까. 결과가 나빠졌으니까. 잘못은 분명 의사에게 있을 것이고, 사람이 죽었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환자 보호자는 소송을 걸었고, 담당 판사는 '나흘간 환자가 계속 복부 불편감을 호소했음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수술을 일찍 시행했더라면 흡인성폐렴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결과를 낳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로 환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담당 의사는 금고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복부 수술로 인한 유착과 그로 인한 장폐색은 흔하게 일어나지만 장이 막혔다고 하여 무조건 응급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유착성 장폐색 중 열에 아홉은 비위관 삽입 및 금식, 수액 치료 등의 보존적 치료만으로도 회복된다. 수술을 하지 않고도 해결될 가능성이 높으니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인 경우라면 대부분 보존적 치료를 우선으로 선택한다. 문제는 어떤 환자가 좋아지고 어떤 환자는 결국 수술까지 이르게 될지 예측하기가 어려우며, 일부 환자는 하루 이틀 만에 좋아지고 어떤 환자는 일주일을 버틴 이후에나 좋아지기 때문에 어느 타이밍에 수술을 결정할지도 애매하다는 데 있다.
처음 제시한 증례는 내가 지난주 수술했던 환자의 사례를 일부 각색한 것이다. 보존적 치료에도 좋아지지 않아 응급 수술을 결정했고, 다행히 환자는 좋아져서 퇴원했다. 그런데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입원한 지 아직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하루만 더 지켜봅시다 했는데 밤사이 심하게 구토를 하더니 흡인성폐렴이 와서 환자가 결국 사망했다면? 보존적 치료를 하다가 환자가 흡인성 폐렴으로 사망한 두 번째 증례 역시 지어낸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을 각색한 것이다. 하지만 금고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것은 내 경험이 아니라 최근 실제로 있었던 판결 결과를 가져다가 붙인 것이다. 나는 내 환자가 사망했음에도 소송을 당하지 않았으니 다행으로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나 역시 언젠가는 '환자가 복부 불편감을 지속적으로 호소했음에도 보존적 치료를 고집하다가 환자를 잃게 만든 실력도 사명감도 없는 의사'로 낙인찍혀 구치소에 수감되고야 말 운명일지도 모른다.
유착성 장폐색이 얼마나 흔할 것 같은가? 우리 과에서 지난 2주 동안에만 다섯 명인가 여섯 명인가가 유착성 장폐색으로 입원했고, 그중 두 명은 결국 응급 수술을 해야만 했다.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기 때문에 매번 이 정도의 빈도는 아니지만, 대장 수술을 받은 환자에서 매우 흔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환자들에 대해서 수술을 할지 말지 여부를 기가 막힌 타이밍에 결정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자신은 없다. 의학이란 늘 불확실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보존적 치료를 하다가 환자가 나빠졌다면 나는 보다 일찍 수술을 결정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며 매우 자책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하는 자책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음에 대한 회한의 감정일 뿐 나의 의학적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결과론에 근거하여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의사를 벌하는 방향으로 자꾸 나아가고 있고, 필수 의료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들에게 이런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필수 의료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은가?
바이탈뽕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나 같은 변태들 말고, 누가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을 선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