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하면 연상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전문가, 고액 연봉, 취직 걱정 없음, 약간의 존경, 사회적 명예...
아직까지도 부모님들 입장에서도 의사가 그리 나쁜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계실 것이고 대학 입시 성적이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지원하는 것만 봐도 앞에서 연상되는 것들이 크게 작용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 제목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의사는 노동자 혹은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
노동, 노동자와 직장인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노동
1. 몸을 움직여 일을 함. 2. 경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노동자
1.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직장인
봉급생활자 (俸給生活者)는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을 총칭하는 말
사전적 의미로서 의사는 둘 다에 포함될 수 있다.
의사도 분명 노동에 대한 대가로 살아가는 사회인이고 국민의 한 사람이 분명하다. 나 역시도 나의 노동의 대가에 대해서 정당하게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노동에 대해서 법이 보장하는 것을 누릴 수 있는 국민이다. 국민으로서 국가에서 정한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도 법이 정한 대로 잘 지키고 있다.
의사를 노동자로 보는 관점에 불편해하는 의사들도 많고 일반 대중들 중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노동자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약자라는 함의를 품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들이 사회적 약자는 아니므로 그런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런지...
의사들이 다른 직장인들이나 노동자들과 구분되는 것은 노동을 행하는 대상이 물건, 건물과 같은 무생물이 아니라 사람 그리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함에 있어서 선의를 가져야 함을 기본적 전제로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고 일정 부분에서는 법으로 윤리적인 면을 강제하고 있다. 그 이유도 노동의 대상이 사람 그리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윤리를 강조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중요한 의미로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하고 항상 선의를 가져야 한다는 부분이 강조되면서 더 나아가 의사는 그런 선의의 대가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인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대가를 이야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다. 그래서 의사들조차도 사회적으로 본인의 임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그와 더불어 노동자와 직장인으로서의 의사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의사도 임금이나 수익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인들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오로지 돈으로만 치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행한 정당한 노동 (치료, 진료 혹은 수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들의 고액 연봉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임금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임금
근로자가 노동의 대가로 사용자에게 받는 보수. 급료, 봉급, 수당, 상여금 따위가 있으며 현물 급여도 포함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의사가 행하는 노동은 간단한 치료부터 아주 어려운 수술 혹은 치료까지 모두 사람에게 행하는 것으로 생명을 다루는 것으로 의사의 임금은 그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치료 결과에 대한 책임도 의사가 속한 병원과 그리고 의사 개인이 져야 하는 부담도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것에 대한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까지 각 개인이 투자한 기회비용이라는 부분도 고려되어야 한다. 나 역시 넉넉하지 않은 사정에 등록금을 빚으로 메워가며 내어주신 부모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다른 대학들보다 더 긴 시간 공부하면서 이룬 것에 대한 것도 나의 노동 가치에 포함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한면에서는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과 비슷한 면도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스펙을 높이 쌓고 자격증을 늘리고 하는 것도 본인의 가치를 높이고 취업시장에서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의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좀 더 나은 가치를 부여받기 위해서 전문의도 취득, 세부 전문의 취득, 내시경 자격증, 초음파 자격증, 교육 수료증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수술 술기를 습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새로운 치료법을 배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결국 의사도 노동자이면서 직장인이라는 이야기를 지금 왜 하고 있는 것인가?
의사도 좀 더 나은 수입, 좀 더 나은 조건, 좀 더 좋은 일하기 좋은 병원을 찾는 사회인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생명을 다룬다는 자부심과 사명감만으로 직업인으로서 의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외과 의사 부족을 메우고자 금전적 보상을 들고 나온 정책들... 그런 해결책은 틀렸다는 것을 전공의 지원율만 살펴보아도 간단히 알 수 있다. 그럼 왜 그런지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논의 자체에 현장 의사들의 목소리는 묻혀있다. 외과 의사로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의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병원 입장에서 외과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부담이고 종합병원이라면 최소한의 인원만 유지한 채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진료는 보고 간단한 수술은 하지만 큰 수술은 큰 병원에서 하도록 권유하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외과의사만으로 좁혀서 생각해보자. 외과를 전공하고 나온 의사가 취업을 하고 싶은 병원은 어디일까? 안정적으로 자신이 배운 수술 기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병원일 것이다. 외과 의사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수술로 환자의 생명을 살릴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유로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살릴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의사도 사회인으로 일반 노동자와 직장인들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데 단순히 일시적인 금전적 보상으로 유인을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양질의 일자리는 어떻게 창출이 될 것인가? 병원에서 외과의사가 필요해서 늘릴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생기는 것이다. 외과의사들이 행하는 노동 (진료, 치료 그리고 수술)에 대한 적합한 수가 보상 및 수가 상승이 있어야 한다. 그럼 수가 상승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결국 의료보험료 상승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껏 보아온 어떤 정권에서도 항상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보험료 상승에 대한 부분이다. 적절한 수가 보상이 되지 않다 보니 의사들은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비보험 진료와 치료, 대형병원은 주차장, 장례식장 운영 등으로 메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지금 시행하고자 하는 의사 증원을 한다는 것은 강제 근무하도록 하는 보완책이 있기는 하지만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이렇게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하등 없는 사항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의사가 되고 시행한 의료 정책 중 성공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의료 정책은 의사에게 자부심과 사명감만을 강조하고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번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의대 정원 확대가 오히려 의료 환경의 왜곡을 가져오고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의사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만 사는 특수한 집단이 아니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 수많은 의사들이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로 그리고 병원에 귀속되어 1년 단위로 계약하면서 직을 이어가고 있는 계약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나의 생각을 남겨두고 싶고 10년의 시간이 지나서 이 글을 읽었을 때 반드시 나의 생각이 틀렸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