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전

서로의 과거를 안아주는 부부 이야기

by 혜다온

그날 아침, 식탁 위엔 식은 밥이 있었다.

남편은 밥을 덜어냈고,

깍두기의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그 순간, 서운함 대신 이상한 평화가 스며들었다.

사랑은 그렇게, 모양을 바꾸며 살아 있었다.

서운함 대신,

이해라는 게 조금 스며들었다.

사랑은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으로 남는다.

그건 밥 한 숟갈의 온기처럼,

작지만 오래 지속된다.


서로의 언어를 모른 채

결혼 초엔 몰랐다.

그 사람의 침묵이 어디서 왔는지,

그 말투가 어떤 상처를 통과한 건지.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그 사람은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언어를 모른 채 살았다.

사랑은 결국,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결핍의 뿌리

남편은 다섯 중 막내였다.

첫째 형은 말을 잃었고,

둘째 형은 늘 그늘 속에 있었다.

그는 항상 “괜찮은 아이”여야 했다.

칭찬도, 관심도 없이 자라며

참는 법만 배웠다.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그 아이가 자라서 남편이 되었고,

그 서툼이 내 앞에서

‘무심함’이 되었다.


이해의 순간

이제는 안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거다.

그의 침묵에는,

서툴지만 진심이 있었다.

차를 미리 끓여두는 일,

고장 난 수도를 고쳐두는 일.

그건 말 없는 사랑이었다.


사랑의 유전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해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이해하고,

서로의 결핍을 안아주며 산다.

그게 사랑의 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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