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분주했다.
장녀였고, 남동생 셋이 있었고, 결혼해서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웠다.
엄마의 하루에는 늘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일들 사이에서 엄마 자신은 언제나 뒤로 밀렸다.
밥을 먹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늘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급하게 드셨다.
천천히 씹는 모습은 기억에 없다.
누군가 더 먹을지, 설거지는 누가 할지, 다음 일을 놓치지는 않을지 엄마의 시선은 늘 밖을 향해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다
엄마는 늘 말했다. “우리 세대는 그런 말 안 해.”
사랑한다는 표현, 다정한 말, 토닥이는 손길.
엄마에게 사랑은 말이 아니라 역할이었고, 표현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아끼고, 참아내고, 대신 나서는 것.
돈이 아까워서, 도우미 일당이 아까워서 친척 장례식에서도 엄마는 발 벗고 나섰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그게 엄마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장례식에서는
엄마의 장례식 날, 나는 이상한 풍경 앞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여유롭게 앉아 반찬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무도 느긋했다. 너무도 평온했다.
아이에게서 “엄마, 아직도 다들 식사하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평생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엄마는 늘 나섰지만
엄마는누군가의 장례식이면 항상 먼저 움직였고, 항상 책임졌고, 항상 자신의 몫을 줄였다.
그런데 정작 엄마의 마지막 자리에서는 그렇게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실이 원망이라기보다는 이상하게 낯설고, 어쩐지 너무 조용해서 더 아팠다.
엄마는 평생 누군가를 위해 살았는데, 엄마를 위해 움직이는 삶은 아무도 배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엄마도, 나도
나는 이제 안다.
엄마는 냉정한 사람이 아니었고, 무심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쉬어도 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엄마 곁에서 괜찮은 척하는 아이로 자랐다.
속상해도 말하지 않았고, 먹고 싶어도 참았고, 서운함을 삼키는 법을 아주 일찍 배웠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엄마도 가엾고, 나도 참 가엾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엄마를 탓하기 위한 글도 아니고,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다만 이런 삶이 있었고, 이런 구조가 있었음을 조용히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구조를 내 아이에게까지는 그대로 넘기지 않으려 한다.
밥은 천천히 먹어도 된다고, 속상하다고 말해도 된다고, 도움받아도 된다고.
그 말을 누군가는 처음으로 말해줘야 하니까.
엄마는 그러지 못했지만, 나는 이제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