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by 혜다온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인사를 할지 말지 잠깐 망설였다.

예전에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밝게 인사하면 공기가 부드러워질 거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나만 인사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도 나는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괜히 민망했다.

괜히 내가 더 노력하는 사람 같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족 생각이 났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 마음의 온도와 비슷할 거라고 믿었다.

가족은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나는 오래도록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말끝이 차갑게 돌아왔던 저녁이 있었다.

나는 위로를 바랐는데

돌아온 건 “네가 예민한 거야.”였다.

그날 밤,

나는 괜히 설거지를 오래 했다.

물소리가 크면

마음이 덜 들릴 것 같아서.

그 순간 깨달았다.

같은 관계 안에서도

온도는 다를 수 있다는 걸.

나는 진심이었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았던 순간.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금이 갔다.

그리고 그 금은

설거지를 하다가,

이불을 펴다가,

혼자 누워 천장을 볼 때

문득문득 떠올랐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왜 나만 더 애쓰는 것 같을까.

왜 나만 더 상처받는 걸까.

그다음에는 서운함이 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 기대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게 냉정해진 걸까.

아니었다.

그건

출혈을 멈추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기대를 완전히 없앤 건 아니다.

다만

그 사람에게 두었던 기대를

그 사람의 크기만큼만 남겨두기로 했다.

기댈 수 없는 사람에게

기대지 않기로.

그 결정을 내리던 날,

나는 조금 울었다.

차가워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따뜻한 사람이고 싶었다.

다만

아무에게나 체온을 내어주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요즘 나는

관계를 다시 분류한다.

어떤 관계는 예의로 충분하고,

어떤 관계는 생활로 괜찮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필요는 없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숨이 조금 편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굳이 먼저 고개를 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온도는 다를 수 있다.


나는 이제

상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내 체온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상대를 극한으로 몰지 않고,

나 자신을 극한으로 몰지 않는 것.

그저

거리를 조정하는 것.


온도가 다르면

몸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옷을 갈아입으면 된다.

나는

나를 얼리지 않기로 했다.

아직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다.


그래도

이전보다 조금 덜 흔들린다.

작가의 이전글엄마는 왜 늘 그렇게 바빴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