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봉사 일기]는 필자가 뉴욕에서 경험한 봉사활동에 대한 기록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통해 배운 것들을 나눕니다.
두 번째 봉사는 내가 머물고 있는 집에서 가까운 브루클린 베드-스타이(Bed–Stuy) 지역을 선택했다. 집에서 도보로 20분인 장소였고 지역 사람들에게 식재료를 나눠주는 활동이었다. 10분 전에 도착해 봉사자 중에서 두 번째로 도착했다.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길에 줄을 서 있는 곳이었다. 식재료 나눔이 시작되는 9시 전부터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운영자로 보이는 다섯 명의 사람들은 음식이 있는 실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실외 공간에 나눠 제 역할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중년의 흑인 여성인 셔럴은 내가 봉사자라고 밝히자, 이름표를 주고 나에게 2층으로 가 손을 씻고 오라고 했다. 손을 씻고 셔럴에게 돌아가자 일회용 앞치마와 라텍스 장갑을 주었다. 그리고 큰 바켓에 야채는 야채별로, 곡물은 곡물별로, 단백질류는 단백질대로 분류해서 담으라고 했다.
큰 바켓을 끌고 실외로 나가 식재료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가장 먼저 줄을 서면 두 명의 운영자가 사람들의 뉴욕시 신분증(NYCID)을 확인하고 나서 음식이 있는 우리에게 보냈다. 야채가 담긴 봉지, 곡물이 담긴 봉지, 단백질은 생선과 치킨 중 선택하는 시스템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분했다. 200여 명의 사람들이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음식을 받아가는데, 뉴욕시 신분증가 있는 누구든 한 달에 한 번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일찍이 줄을 서있던 사람들은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식재료를 알뜰하게 챙겨 갔다. 베드-스타이가 주로 흑인들이 사는 동네인 것에 비해 음식을 받아가는 사람들의 인종은 다양했다. 중국인, 히스패닉, 흑인들이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손짓, 발짓으로 소통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간단한 중국어,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소통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처음 봉사를 온 나와 같은 봉사자인 다이쿠아나는 내 옆에서 바켓에 식재료가 떨어지면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셔럴의 시야는 모두를 향했다. 처음에는 내 옆에 있다가 나와 다이쿠아나의 속도가 잘 맞아떨어지자 셔럴은 다른 곳으로 가서 분주하게 일을 했다. 셔럴과 다이쿠아나와 중간중간 스몰토크를 하면서 이들이 엄청난 동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셔럴은 50대로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70살로 은퇴를 하고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다이쿠아나는 35살로 4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셔럴은 평생 브루클린에 살아왔다는 것과 자신이 봉사하는 일에 자부심을 보여줬고 다이쿠아나는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키워내며 학업을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뚝심이 보였다.
세 시간 동안 서 있으면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식재료를 그들의 가방에 넣어주고, 짧은 인사를 건네는 일련의 일들이 보람 있게 느껴지는 동시에 점점 몸이 피로해졌다. 발바닥도 아팠고 어깨도 결렸지만 보람이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스치듯 지나쳤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으니 잠시나마 이 커뮤니티에 속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간과 노동으로 이 커뮤니티에 기여를 한 후에서야 잠깐이나마 이곳에 속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