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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Nov 23. 2017

편견을 덮고 있던 것은 또 다른 편견이었다

법정 드라마 <리갈 하이>의 막장 이혼 재판 에피소드

"누구의 변호를 맡든 상관없다, 나의 목표는 재판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돈을 많이 받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재판에서 패소한 적 없는 변호사가 세상에 존재할까? 2013년에 종영한 일본의 법정 드라마 <리갈 하이>는 그런 설정의 변호사 코미카도 켄스케(사카이 마사토 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또 다른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마치 만화에서 나올 법한 극단적인 설정이다. 변호사 마유즈미 마치코(아라가키 유이 분)는 법이 정의와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라고 굳게 믿고 있다. <리갈 하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재판을 해결하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외모지상주의에 찌든 한 부부의 이야기(시즌2의 3화)에 충격받아 리뷰를 남긴다.





예쁜 아내 원하는 못생긴 남편 VS 성형으로 예뻐진 아내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너무나 못생겨서 숱한 설움을 겪었다. 자신의 2세는 이렇게 살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서 남들 보기에 분수에 맞지 않을 만큼 예쁜 아내를 찾는다. 그는 끈질긴 구애 끝에 미모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데 성공했다. 행복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성형을 통해서 예뻐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속았다는 판단에 이혼을 생각하고 변호사 코미카도를 찾아간다.



이번엔 아내 입장이다. 아내는 비록 처음에는 못생긴 사람이어서 피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자신을 극진하게 보살펴주고 사랑해주는 이 남자의 모습에 반해서 결혼했다. 그이에게 사랑받아서 행복했기에, 이 사랑이 깨지는 것이 두려웠기에 차마 자신이 원래는 못난이였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고, 그를 극진히 챙겼다. 그러나 살다 보니 들켜버렸다. 당연히 이혼은 원치 않는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남자를 맞이한 마유즈미는 사정을 듣고 부부를 화해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코미카도는 오히려 재판을 크게 만든다. 남자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수임료를 제시하며 여자로부터 위자료를 받아내자는 제안을 한다. 재판에서 하는 변론도 잔인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성형했다는 사실을 말하면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할 거라는 여자의 불안을 코미카도는 '사기 결혼'이라 명명한다.



부부의 아이 얼굴을 예상해서 발언중인 변호사 코미카도 켄스케(사카이 마사토 분) ⓒ 일본 후지 TV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예쁜 아이는 태어날 수 없는 부부라고 각종 자료를 제시하며 몰아붙인다.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남편을 통해 깨달았다고 말하는 여자를, 겉과 속이 다른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다. 이쯤 되니 재판장에서 뛰쳐나가지 않은 여자가 대단해 보였다.





이혼을 막기 위한 여자의 승부수, 그리고 반전


코미카도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변론, 자신의 눈물 어린 호소에도 냉담한 남자. 여자는 크게 충격받는다. 그래도 이혼만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무리수를 둔다. 남편에게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흘린다. 이혼 소송이란 원래 이렇게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렇게 해서라도 없던 일이 된다면 남편이 지고지순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던 마음, 그 마음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걸까? 어쨌든, 내내 차가운 표정의 남자였지만 막상 임신 소식을 들으니 미안한 모습이다. 아무리 막장이어도 이 정도의 인간성은 있구나...싶을 때! 여기서 다시 코미카도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코미카도는 임신이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남자에게 들이민다. 남자의 표정은 제 발로 연전연패의 코미카도를 찾아갔을 때 보다 더 냉담해진다. 결국 아내는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재판의 결말, 그 후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자는 소송이 끝나고 집을 정리하다 우연히 아내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 일기장에는 남편을 향한 온갖 애정 넘치는 이야기만으로 가득하다. 그제야 상대방이 못생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는 여자를 찾아간다.



그는 꽃을 들고 집 앞에서 여자를 기다렸다. 문을 열고 나온 여자는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남자는 꽃을 건네며 위자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이어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 여자의 집에서 웬 잘생긴 남자가 따라 나온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의 전 남편을 향해 여자는 입을 뗀다.



마지막 대사를 하는 아내 호노카(미나미 분) ⓒ 일본 후지 TV



"켄고 씨, 당신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어. 나는 못생긴 사람이 마음은 예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 결국 나도 외모로 판단하고 있었던 거야. 얼굴도 마음도 못생긴 사람도 있고, 얼굴도 마음도 예쁜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 그걸 당신이 가르쳐 줬어. 고마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막장 이혼 스토리는 이렇게 끝이 났다. 마지막 대사를 들으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또 다른 편견으로 세상을 보며 만족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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