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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Oct 08. 2017

<아이 캔 스피크> 안과 밖의 피해자 혐오 정서

[영화] 우리 주변의 피해자 혐오에 대해.

※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다. 다른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들과 특별히 다른 점은 피해자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추측해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이었다.



<아이 캔 스피크>를 본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나도 역시 몇몇 장면에서 특히 가슴이 아팠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나옥분'의 남동생은 미국에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위안부 피해자인 누나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한 번, 할머니가 어머니 무덤에서 통곡하며 왜 자신을 부끄러워했냐고 원망하는 장면에서 또 크게 한 번 울컥했다.



하나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왜 위안부 피해자는 피해자라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숨겨야 하는가. '나옥분' 할머니는 수십 년 동안 시장에서 살며 가장 친하게 지낸 이웃에게도 자신이 입은 피해를 말하지 않았다. 가족마저 자신의 피해자성을 흉으로 생각하는데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 정말 자연스럽지 않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더 슬펐다.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최초 가해는 일본이 한 것이 명확하다. 하지만 주변인,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 의한 2차 가해는 여전한 것도 또한 명징하다. 이런 일이 우리의 주변이라고 다를까. 학교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 남자(무리)는 떳떳이 학교 다니지만 피해자는 손가락질을 받다가 전학을 가거나 자해를 시도하며, 법원은 가해자(들)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 형벌을 낮춰준다는 스토리라인 또한 소름 돋도록 자연스럽다. 성폭행 사건을 다룬 인터넷 뉴스 기사에는 아직도 여자가 먼저 홀린 것 아니냐, 싸게 굴었던 것 아니냐라는 의도 담긴 댓글이 달린다.



영화의 미국 의회 발언 씬에서 일본을 포함한 참석자들의 발언 또한 충격적이다. '당신들은 장교 정도의 대우를 받지 않았는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는가', '얼마나 돈이 더 필요하길래 이렇게까지 하는가' 등의 폭력적이고 의도 담긴 발언들이 이어진다. 이는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언론, 사회, 특정 정당으로부터 들었던 말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진상을 밝혀달라고 촉구하는 단식을 벌인 세월호 피해자 가족에 대한 도덕성 검증, 정부로부터 많은 돈을 받았다는 유언비어 공격 등. 최근에는 이런 일(세월호서 엄마 아빠 잃은 생존 아기 근황 "학교서 왕따 당해 전학만…")도 있었다. 그리하여 피해자 자신도 피해자성을 숨긴다. 숨기고 자학하고 트라우마는 회복되지 않는다. 피해자성은 순수해야 얻을 수 있는 조건 같은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사람만이 피해자라는 지위를 얻는 것 또한 아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우리는 처음으로 한국인 위안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45년(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영상)보다도 더 많은 웅크림의 세월이 필요했다. 영화에서 '나옥분' 할머니도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래 고민하다 결심하는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인터뷰 이후 할머니의 표정과 행동이다. 오래 뭉쳐있던 근육이 풀린 듯 활기차고 에너지 넘친다. 그저 말하는 것. 숨기지 않는 것. 누군가 나를 이해하는 것. 이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사람을 바꾼다. 이게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회복의 시작이다.



요즘은 그래도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들이 연대하거나 인권단체 등과 함께해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다. 45년의 시간 보단 낫지만 아직 부족하다. 개인의 인권과 감정의 중요성에, 사회는 아직 너무나 무관심하다.



피해자 혐오는 어떤 구조적, 개인적 심리에 의해 생기는가, 어떻게 완화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화와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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