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역사책방'에 다녀와서
열마 전, 역사책방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서촌에 있는 한 서점이다. 처음 오자마자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일주일 만에 두 번을 찾았다. 알수록 재미있는 곳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역사책들이 가득하다. 책장에 시대별로, 지역별로 한국사와 세계사에 관련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카페처럼 커피나 케이크 등을 주문할 수 있어서, 이곳에서 구입한 책을 테이블에 앉아서 읽거나 음료를 마실 수 있다. 복층 같은 공간에는 아늑하게 좌식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독립 서점은 보통 셀렉샵처럼 자신이 읽었던 책이나 추천받은 책들을 모아놓은 서점이라고 알고 있다. 이곳은 그 개념을 확장한 공간이다. 역사책방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다. 페이지의 타임라인을 조금만 내려보면 다양한 이벤트를 확인할 수 있다. 토론회, 강연, 북 토크, 음악회 등등. 가장 최근에 했던 이벤트는 '미스터 션샤인' 답사였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거닐었던 곳을 같이 답사해보는 이벤트였다. 10월 26일에는 10.26을 맞아 무려 한홍구 교수님의 강연이 있다고 한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역사책방 페이스북 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의 소식을 매일매일 확인하고 참여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상상을 해봤다. 돈이라는 현실적이고도 거대한 장벽과, 서점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고민해봐야 답도 안 나오니 잠시 거둬두고 상상력만을 발휘해봤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책을 모아서 서점+카페 형태의 가게를 차린다. 그러면 내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높은 확률로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졌을 거다. 그것을 확인할 때의 연대감, 나와 같은 가치관 혹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안도감과 확신을 상상해본다.
여러 이벤트를 기획한다. 물론 혼자 하지는 않는다.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뽑는다. 팀을 꾸려서 내가 없어도 굴러갈 수 있게 만든다. 그런 팀이라면,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만 해도 행복할거다.
그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서 나도 같이 강연을 들으며 지적 고양감을 느낀다. 가끔은 그 전문가와 개인적으로 알게 되어, 깊이 있는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강연으로 느낄 수 있는 포인트와는 또 다른 기분을 맛본다. 음악 등 예술 쪽으로도 가능하면 이벤트를 열어본다. 유명한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인디 예술가를 같이 초빙해서 전시회나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협업이 일어나는 장이 될 수도, 사람들이 모르던 예술가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그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굉장히 기쁠 테다.
만약 가게가 수명이 다 하면 어떻게 할까. 왠지 나는 그전에 내 열정이 먼저 식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 시기가 온다면 나는 이벤트를 같이 기획하던 한 명 또는 그룹에게 넘기고 떠나고 싶다.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서 떠나고 싶다. 끝은 그렇게 맺으면 깔끔하고 예쁠 것 같다.
눈치도 없이 시원하게 김칫국을 들이키고 나니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되었음을 느낀다. 사실 이 글은 역사책방 테이블에 앉아서 썼다. 역사책방 페이스북 페이지 구독을 신청했다.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도 추가했다. 나도 이런거 죽기 전에 차려볼 수 있는걸까? 가능할까? 나는 안될거야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