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봄을 맞이하며

지긋지긋했던 네덜란드 겨울의 끝자락

by 헷지호그

정말 길고도 긴 겨울이었다.


5년이 지났어도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축축하고 우울하고 어두운 네덜란드의 겨울의 끝이 보인다.


불안해서 미루고, 미뤘기에 불안한 그 편치 않은 감정과 동거한 지 꽤 되었다. 파란 하늘과 햇살의 부재를 탓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먼저 꺼내 놓는 나의 이야기.


매번 저 길은 어디로 통하는 걸까 싶던 집 뒤 산책길을 따라 보석을 발견하고 왔다. 다다음주에 이사를 앞두고 있으면서 이 넓은 창과 아름다운 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게 지금 생각하니 씁쓸하지만 다가올 겨울에 내 심리적, 그리고 물리적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더 학교와 가까운 곳에 가져다 놓아야 하기에 미래를 위해 이사한다고 세뇌하는 중이다. 이미 결정했으니 어쩔 수 없어.

IMG_8159.jpeg 너무 늦게 발견한 집 근처 공원.


불안인지 우울인지 춘곤증인지 겨울을 보내주고 봄을 맞이하면서 스멀스멀 무기력증이 다시 도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학기 한가운데. 언제쯤 회피형 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나마 날씨라도 도와주니 산책하고 한숨 돌리고 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발 닿는 대로 걷다가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눈을 감아도 찬란한 햇살의 일렁임을 느끼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 사람들이 이래서 명상하는구나, 초록과 하늘과 자연의 기운을 잔뜩 들이마시고 방에 돌아가서 우울과 불안과 미루기와 단절해야겠다, 싶었다.


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건축 공부를 시작했는데, 현실과 타협하고 쓰라렸던 자기 합리화를 거쳐 고른 석사 공부는 자꾸 나를 컴퓨터와 대화시킨다. 더더욱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싶었던 요즘인데, 다행히 컴퓨터의 언어를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시는 교수님을 만나게 되어 내 논문 갈 길이 대략은 정해진 듯하다.


길어지는 낮을 따라서 내 마음의 불안이 여유에게 자리를 내어주기를 절실히 바란다. 잘 걷고, 잘 뛰고,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공부하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자.


IMG_8165.jpeg 좋은 명상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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