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습게 보면
적어 두면 힘이 된다 - 둔필승총
엄마 집을 정리하면서 고가구 책상 두 개와 퀸사이즈 침대를 받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단잠에 취해 있을 일요일 아침 일곱 시, 몽롱한 정신을 커피로 수습하고 남편을 깨웠다. 전날, 집에 놀러 온 지인의 도움으로 침대는 1층 쓰레기장 옆에 가져다 놓았다. 이제 이삿짐 아저씨가 오시기 전에 아이들이 쓰던 책상 두 개를 남편과 치워야 할 차례였다. 책상 하나는 사무실에서 쓸 것이니 방에서 거실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나머지 하나가 문제였다. MDF를 조립해 만든 책꽂이 겸용 책상은 생각 외로 무거웠다. 나사를 풀어 해체해 들고 나갈까? 남편이 드라이버를 집어 들고 나사 몇 개를 풀었다. 손에 도구 든 사람에게 훈수 두는 것이 실례인 줄 알기에 2~3분가량 침묵을 지켰으나,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여보, 그 책상 배송 기사님이 조립하는 데 십오 분 이상 걸린 책상이야.’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찰나, 이삿짐 아저씨가 들이닥치시는 덕분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나와 남편은 현관에 서서 책꽂이 겸용 책상을 밀고 끌며 낑낑대는데, 이삿짐 아저씨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드님과 함께 분해된 퀸 침대와 매트리스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시니, 우리 네 사람은 잠시 오도 가도 못 했다. 시간이 돈인 아저씨께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책상을 번쩍 들고 싶었으나 지식 노동자인 나와 남편은 얼굴만 시뻘게질 뿐이었다. 아저씨는 그런 우리를 흘긋 보시더니 바퀴달린 널빤지(‘밀차’ 또는 ‘핸드카’라고 부른다)를 발로 툭 밀어주셨다. “이거 쓰세요.” 그 말씀에 감복해 책상을 밀차에 올리고, 아저씨 부자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 책상, 우습게 봤는데 생각보다 무겁네요.” 했더니 아저씨께서 싱긋 웃으며 답하셨다 “우습게 보면 망해요.”
닷새 후 금요일, 새 학기로 파김치가 된 몸을 일으켜 동네 떡집으로 향했다. 또 한 주가 무사히 지나가고 있으니, 선생님들과 떡을 나눠 먹으며 자축할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비닐을 안 써 보려고 집에서 챙겨온 플라스틱 통을 떡집 사장님께 내밀었다. “개피떡 오천 원어치, 절편 삼천 원어치 담아 주세요.”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하셨다. 다 안 담길 것 같다며 절편을 한쪽 모서리에 쌓으시더니, 흰색과 쑥색 개피떡을 차곡차곡 담기 시작하셨다. “어머, 생각보다 통이 깊네요. 우습게 봤는데......” 비닐 쓰기 싫어서 통 들고 온 것을 아시고, 잘했다고 칭찬하시며 덤으로 흰 개피떡을 한 개 더 넣어주셨는데도 여유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나는 전에도 그 통에 개피떡과 절편 만 원어치를 담아 갔었다. 큰 사장님께 통에 딱 맞는 만큼 떡을 담고 싶다고 했더니 만 원어치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었다.
내 눈과 내 생각, 내 경험과 내 지혜를 벗어나는 무엇을 대할 때, 나의 눈, 생각, 경험, 지혜를 동원해 그 범위 안에서 답을 구하기 쉽다. 익숙하고 안전하니까. 나를 과신할수록, 무엇을 만만히 볼 확률이 커진다. 우습게 보면 결국 내가 우스워진다. 가치와 관점의 변화 한가운데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데리고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니, 조심스레 살피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살살 만져보자. 내 집에 더불어 사는 괭이 선생이 물걸레 로봇 청소기를 처음 만질 때처럼. 그러다 보면 로봇 청소기 위에 올라타는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