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 두면 힘이 된다 - 둔필승총
추석 사흘 전, 막내를 데리고 부산행 기차에 올랐다. 출판사 대표님과 프리랜서 편집인 모두 부산에 계시므로 책 출간을 위해 적어도 한번은 뵈어야 했는데, 서울과 부산의 거리가 상당해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사실, 부산은 서울에서 KTX를 타면 세 시간 안쪽으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이므로 멀다고 할 수 없다. 그 거리를 오가는 데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많이 드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명절마다 시부모님을 뵈러 부산에 다녀오니, 그 일정을 조금 앞당기면 차비 부담을 덜 수 있겠다는 ‘주부적 지혜’가 샘솟았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막내 한 명만 달랑 데리고 가는 길은, 어색하고 허전하면서도 가뿐했다.
부산역에서 책 발간 미팅을 마치고, 다음 날 시부모님댁으로 입성하자마자 막내는 “엄마, 심심해.”를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놀아 줄 형과 누나, 사촌들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심심해 타령’이 판소리 열두 마당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어머님께서 밭에서 캐 온 땅콩을 삶아 소쿠리에 내오셨다. 볶은 땅콩 맛에 길든 서울 사람 입에 경상도의 삶은 땅콩은 나름 별미였다. 막내는 나와 달리 땅콩 맛에는 관심이 없었고, 눈사람 모양의 땅콩 겉껍질을 까는 데 ‘꽂혔다’. 내가 어머님과 도라지 껍질 까기 중노동을 수행하는 동안, 막내는 손톱에 피가 비치도록 한 시간 남짓 동안 땅콩 까기 놀이에 심취했다.
더는 깔 땅콩이 없어 막내 입에서 ‘심심해 타령’이 재방송되려는 순간, 명절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성룡(중국어 표기법에 의거 ‘청룽’이라 해야겠지만 명절의 성룡은, ‘성룡’이다)의 영화 <취권>이 앙코르 방송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속 성룡은 젊다 못해 어렸다. 20대의 성룡이 <취권>에서 술동이를 들고 연거푸 마시는 연기를 한 지도 40년이 되었으니까. 막내는 순식간에 <취권>에 빠져들었다. 엄마의 재취업으로 동네 태권도장을 다니기 시작해 3년 차가 된 막내는 태권도 2품의 무도인답게 나름 진지한 눈초리로 영화를 감상했다. 그렇게 ’심심해 타령’은 사라지고, 막내가 킥킥거리는 소리에 아버님의 웃음이 얹히는 순간, 설과 추석마다 성룡 영화를 틀어주는 방송사의 깊은 뜻 - 세대 화합 - 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추석 당일 오후가 되어 아가씨네 식구들까지 한 상에 둘러앉았다. 삶은 문어와 수육 접시 사이에 초장과 막장이 놓이고 삶의 짠한 사연들이 곁들여졌다. 이야기는 나의 남편이 장교 임관을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군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다짜고짜 아버님은 뭐 하시는 분이냐고, 대학은 나오셨느냐고 묻더란다. 성룡처럼 평생 몸으로 먹고사신 아버님이 그 질문 앞에서 얼마나 작아지셨을지를, 대학을 나온 나는 감히 어림할 수 없으면서도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애썼다. 이번 추석에 며느리에게 짬짬이 들려주신, 아버님의 삶의 토막들은 짠했다.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났고, 객지에서 가정을 꾸렸으니 또 돈을 벌어야 했던 아버님. 자식 셋이 동시에 대학에 다녔을 때, 등록금 수백만 원을 한 번에 해결해야 했다던 말씀이, 엊그제 영화 <취권>을 보시며 어머님께 건네시던 말씀과 겹쳐졌다. “이 사람이 돈을 억수로 번다.”
아버님은 돈 버느라 고생을 하셨다. 고생하신 것에 비해 돈을 억수로 벌진 못하셨다. 자식 셋을 낳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셨으니까. 자식이 원수다. 나도 그렇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돈을 억수로 버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것을 안다. 아버님처럼 부지런하지도 못한 데다가 근성도 없고, 결정적으로 약골이라 애당초 글렀다. 대신, 나는 다른 꿈을 꿔요. ‘억수로’ 짠한 사연들을 듣고, 그 사연을 전하고 싶다. 듣는 이들이 사연에 깃든 마음을,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을 헤아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