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두면 힘이된다 - 둔필승총
몇 주 전이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집사님’들과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어느 집사님께서 학교에서 강의하는 것 재미있냐고 물으시길래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사실, 그리 재미있진 않다. “일을 재미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일은 돈 주니까 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면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다. 일요일 오후 교회 식당에서 오가는 대화의 목적은 팩트 체크가 아닌 ‘친교의 말하기’니까. 그 집사님의 다음 질문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그 학교에 내가 아는 누구가 있는데......” 나는 그 말을 받아 그 누구가 있다고 답했다. “그 누구가 많이 아팠는데,” 라는 말을 꺼내시는 순간, 나는 조금 긴장했다. “집사님, 그건 그 학생의 개인 정보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학생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면 너무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짧게 그렇다고만 답했다. 여기서부터 내 실수였다. 나는 그 집사님으로부터 걔가 아파서, 걔 엄마의 신앙이 깊어졌다는 은혜로운 말씀을 듣게 되었다. 내가 교회에서 가장 듣고싶지 않은 ‘간접 간증’이 이어졌다. 아차 싶었다. 시점을 과거로 돌려 예민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집사님은 나쁜 의도로 ‘걔 엄마’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오히려 아멘으로 화답해야 할 미담에 가깝다. 그러나 나는 ‘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 본다. 내 허락을 받지 않고 내 아이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제3자에게 들려준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했다. 고통을 신앙으로 극복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해도, 그 이야기를 제3자에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선전하기 위해서라면 같은 교인 입장이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분은 선하시므로 본질적으로 악을 계획하실 수 없는 분인데 말이다. 아니다. 다시 대화 목적으로 돌아가자. 맥락은 ‘친교의 말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일요일 오후에 뜨신 밥 먹고 참 쓸데없는 짓 하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본인의 동의 없는 개인 정보 공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추석 연휴에 나와 남편, 내 동생, 동생의 남편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강원도 모처로 거주지를 옮기게 된 엄마의 짐 정리를 돕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벌써 그 모처로 가셨고, 늙고 기운이 없는 엄마를 대신해 자식과 자식의 배우자들이 책 정리를 대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정리 전에 여동생 집에서 차를 마셨는데, 엄마의 최근 행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네 사람은 엄마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입장과 성향에 따라 네 사람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다. 그 와중에 나는, 엄마가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년 전, 나와 가까운 이들이 나의 정서 건강을 걱정해 내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당시에 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건 사실이었다. 내가 걱정되면 내 앞에서 말을 하면 되고, 내가 왜 그렇게 불안정한지 내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 그 일로 나는 오래 사귀었던 친구와 연락을 끊었다. 화는 풀렸지만, 아직도 그와 연락하지 않는다. 엄마 집 책 정리를 마치고, 엄마 일은 엄마가 잘 알아서 할 걸로 믿었다. 뒤에서 한 마디도 안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 앞에서 여덟 마디 하고 뒤에서 두 마디 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