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 두면 힘이 된다 - 둔필승총
“바라던 대로 일이 안 풀릴 때, 기독교인은 하나님 탓을 한다. 나는 무신론자이니 누구를 탓해야 할까?”
학생의 작문 노트에서 썩 용감한 문장을 만났다. 내가 출강하는 학교는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설립한 대안학교다. 교직원은 모두 기독교 신자이고, 학생들도 대부분 그러하다. 학생들이 쓰는 글에 직간접적으로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회 간다고 집을 나섰다가 피시방에 눌러앉은 중학생 아들처럼, 쓰던 맥락에서 논점을 일탈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마무리되는 글이 종종 눈에 띄었다. 나는 그런 글의 저자에게 하나님은 블랙홀이 아닙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하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무신론자의 커밍아웃은, 그래서 신선했다.
종교라면 골치 아픈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종교 여부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각자의 믿음대로 산다. 다원주의 세상에서 각자의 신념 체계는 보편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차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개똥철학’일지라도 철학은 필로소피아,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우습게 여길 수 없다. 나는 사랑을 가벼이 여기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하물며 그 사랑에서 개똥 냄새가 날지라도.
내가 믿는 종교,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사랑이다. 불완전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완전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살리고 남도 살린다는 것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를 살리신 건 내가 안다. 그걸 확신한다고 남도 살리겠다고 무식하게 들이대면 실례다. 너도 나와 같은 죄인이니 예수 믿고 천국 가자는 말은 권유의 형식으로 포장된 협박에 가깝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나도 그런 전도(?)를 했던 흑역사가 있었다. 나름 진심이었으나 무례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신론자 학생의 문장에 뭐라고 피드백을 해 주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내 삶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남 탓을 하기 앞서 내 탓에서 출발하는 ‘자아 성찰'을 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문학을 가르치는 자의 임무니, ‘니 탓이오'라고 적을까 했다. 그러나 40년 넘게 인생을 살면서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자리가 유전과 환경의 조합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쓸 수는 없었다. 잿빛 미래를 앞둔 청년이 될 나의 제자여, 부모 탓, 조상 탓 대신에 선생 탓을 하게나. 국어 선생, 바로 내 탓이오.
사진 : 히비스커스의 꽃말은 “남몰래 간직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