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죽으면 땡이야

적어 두면 힘이 된다 - 둔필승총

by 박쥐마담

작업 공간을 얻으면서 웃긴 일이 많았다. 허리를 펼 수 없는 공간을 임대하면서 월 30만 원을 받겠다는 건물주에게 무슨 표정으로 응대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저렴한 월세 사무실 치고는 꽤 멀쩡해 보여 찾아가니 겨울엔 얼어 죽고 여름엔 더워 죽을 판이었다. 차라리 대출받아 전세를 얻으면 어떨까 해서 살펴본 곳은 층고도 높고 쾌적한 데다 보안도 되는 건물이었다. 단지, 금액을 듣고 헛웃음이 나왔을 뿐이었다.


발품을 꽤 판 뒤에 지금의 작업실을 얻었다. 혼자 월세를 감당할 깜냥이 되지 않아 세 사람이 돈과 힘을 합쳤다. 셋의 동선이 겹칠 일이 거의 없는 데다가 내 집 근처라 저녁엔 첫째 아이 독서실로 활용하면 투자 대비 효과는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도 부담이 다 줄지 않아서 보증금을 올리는 대신 월세 몇 만원을 내렸다.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 월세 45만 원에 대한 부가세 4만 5천 원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 같은 4만 5천 원, 우리 집 한 달 과일값에 육박하는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 서둘러 사업자 등록을 했다.


전부터 동네에서 소규모로 교육 사업을 할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잡문을 쓰는 ‘B급 예술’만 할 처지가 아니니까. 시간강사로 출강하는 학교는 멀고, 그 거리를 오갈 체력은 해가 바뀔 때마다 떨어졌다. 남들은 조기 퇴직하는 나이에 재취업을 한 결과였다. 학교에서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을 새가 없이 주방으로 출근해야 하므로 체력 안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긴 동선을 줄일 방법이 없었다. 운전을 하기도 했으나 또 다른 스트레스를 양산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결국 ‘동네 점방’을 열 마음을 먹었다. 일단 사업자 등록부터 하고, ‘예비 몇 학년’의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찬찬히 열리라. 올해 두 권의 책을 내는 것이 먼저니까.


월세 계약을 하고 한 달 반이 지났을 무렵, 그러니까 지난주에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보낸 우편물을 받았다. 사업자 번호를 발급받았을 뿐, 소득은 1원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국민연금 신고를 하라니 기가 막혔다. 전날 국민연금이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회사들에 재투자했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국민들의 노후를 담보로 잡고 있으면서 잘 관리하진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짜증이 났다. 짜증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니, 1355 국민연금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현재 매출이 없는데 무슨 연금을 어떻게 내느냐는 나의 질문에 담당자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그러나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서식은 따로 없고요, A4 용지에 소득 발생이 없다고 적어서 팩스로 보내주시면 6개월 유예해 드립니다.”


얼마 전, 친구와 국민연금에 대한 수다를 떤 적이 있었다. “배우자가 죽으면 연금이 반 토막 나. 그게 유족연금이야. 그 유족연금과 내 연금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을걸?” 이 말에 친구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냐고, 그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워워, 친구가 왜 흥분했는지 나는 잘 안다. 나나 친구나 배우자의 사회생활이 일취월장하도록 우리의 경력을 제물로 바친 경단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연금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 상태라고나 할까. “친구야, 우리 연금을 깨우긴 글렀어. 대신 남편을 건강하게 잘 보필해서 오래 타 먹어야 하는 거야. 죽으면 땡이라고. 그걸 모르겠어? 그게 싫으면 지금부터 벌어야지 뭐.”


사진 : 작업실 앞 장면가옥. 어두울 때 퇴근하면 보람차다.




뒷이야기


국민연금 콜센터에 전화한 김에 물었다. “나중에 연금 수령할 때, (배우자의) 유족 연금과 저의 연금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건가요?” 설명을 들어보니, 단순하게 두 연금 중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약간의 저울질을 해야 했다. 내 연금보다 유족연금이 월등하게 많으면 내 것을 포기하는 게 낫고, 비슷하면 내 연금을 선택하면서 유족연금을 30% 보전받는 것이 나았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유족연금 50만 원 VS 내 연금 30만 원 -> 배우자의 유족연금 50만 원 선택, 수령

유족연금 50만 원 VS 내 연금 40만 원 -> 내 연금 40만 원 선택 + 유족연금 30% 15만 원 = 55만 원 수령


가까운 미래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는 뉴스의 팩트체크도 해 봐야겠다. 아무튼, 죽으면 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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