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미국 이모가 왔다. 이모는 전 지구를 통틀어 내 엄마를 혼낼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이다. 테레사 수녀님도 울고 갈 사랑의 화신인 엄마는 누구에게 혼날 짓은커녕 칭찬받을 일만 골라 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런 엄마라고 해서 인간적인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단점을 콕 짚어서 혼내는 건 미국 이모다. 엄마는 이모에게 번번이 깨진다.
이 씨 여자와 김 씨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이모와 엄마는 내 외가의 ‘이 씨’와 ‘김 씨’ 캐릭터를 각각 대표한다. 이 씨는 모 제분 회사 창업주인 이모와 엄마의 외삼촌을, 김 씨는 그 제분 회사의 총판권으로 사람을 돕는 인생을 산 이모와 엄마의 아버지를 상징한다. 이모와 엄마 모두 성실하게 생업에 종사했으나 ‘이 씨’적 캐릭터인 이모에겐 돈이 있는 반면 ‘김 씨’적 엄마에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모는 돈을 모으는 데 열심을 낸 사람이고 엄마는 돈을 쓰기 바빴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모는 노후를 걱정할 일이 없지만 엄마는 나와 동생의 근심거리다. 이런 면에서 엄마는 이모에게 번번이 야단을 맞는다. 아마 인생 말년까지 그럴 것이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물려준 낡은 아파트에서 십 년 넘게 살고 있다. 엄마를 포함해 여섯 형제가 공동 상속한 아파트에서 엄마가 대표로 사는 건 엄마가 집도 절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 아파트가 여의도를 마주 보는 한강 변에 있지만 않았어도 엄마는 상속 지분을 정리해 콧구멍만 한 새 집에서 살며 다이소에서 2천 원짜리 그릇 사는 재미를 맘껏 누리고 있을 것이다. 한강변 낡은 아파트는 묻어두면 돈이 되므로 엄마는 그 아파트와 함께 십 년을 묻혔다. 겨울이면 중앙난방으로 관리비가 50만 원까지 치솟는 집에서 열두 번의 겨울을 보내면서 엄마의 소원은 통일이 아닌 탈출이 되었다.
최근 엄마는 낡은 아파트를 탈출할 꿈에 부풀었다.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엄마 대신 아파트에 들어와 살면서 관리비를 내 줄 가족도 찾아냈다.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형제 중 한 명이 반대를 했다. 거처로 낙점한 곳도 정리가 되지 않아, 결국 엄마의 탈출 시나리오는 이모의 훈계로 마무리되었다. 재건축 시공사가 곧 정해지고 이주도 2년 안에 하게 될 텐데 그걸 못 참냐고, 그걸 못 참아서 이 사달이 나게 하냐고, 엄마는 간만에 미국에서 나온 이모에게 몇 번씩 혼이 났다.
아마 이모는 앞으로도 엄마를 야단치고 엄마는 이모에게 혼이 날 것이다. 사람 스타일은 잘 바뀌지 않으니까. 내가 기대하는 건 장례식이다. 엄마의 장례식에는 지금까지 엄마가 돈, 시간, 정성을 들여 먹이고 입히고 벗해준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이모 장례식의 서너 배 규모가 될 것이다. 병상에서 엄마의 전복죽을 먹었던 환우들, 함께 밥해 먹고 농사를 지으며 친해진 노숙인 아저씨들, 낡은 아파트 문간방에 깃들었던 다양한 식객들에게 육개장을 대접하려면 나와 동생은 지금부터 돈을 모아 놓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엄마가 가진 최고의 능력 - 자기 주머니를 남에게 털어주는 거로 모자라 남의 주머니도 터는 - 은 그렇게 마무리될 것이다. 인생 역전,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는 이모 말마따나 그날은 바로 그런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