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 두면 힘이 된다 - 둔필승총
남편은 지난주부터 3주 연속으로 토요일마다 회사 연수에 참석하고 있다. 1년 52주 중 굳이 단풍놀이 철인 주말을 골라 연수 일정을 잡은 연수 담당자의, 아니 결정권자의 무심함에 콧방귀가 흥흥 나왔다. 하긴, 붉게 물드는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봄과는 또 다른 화려함을 느끼는 것 따위는 냉철함이 생명인 그 업종 특성과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속리산이나 내장산에 갈 계획은 없었지만 가족들과 가까운 궁궐 후원이라도 거닐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으로 끝나게 되었다.
첫째는 피시방에 둘째는 토요 방과 후 교실에 가고 집에는 나와 막내, 고양이만 남았다. 여덟 살 어린이는 세 살 어린이와 달리 피아노나 책장 위에 기어 올라가지 않는다. 방문 문틀을 암벽타기 하듯 오르지만 제 몸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뛰어내리지 않는다. 여덟 살 어린이는 다섯 살 어린이와 달리 레고 블록 조각을 콧구멍에 넣지 않는다. 두 시간씩 블록을 붙들고 놀지만 제 콧구멍에 콩알만 한 블록을 넣었다가는 응급실에 가서 젓가락처럼 긴 핀셋으로 꺼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제 몸의 구멍에 블록을 끼우지 않는다. 여덟 살 어린이는 일곱 살 어린이와 달리 불 꺼진 커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린이 성경을 읽고 안대를 하고 늘 듣는 음악을 틀면 오늘 밤도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안전하게 잘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군소리 없이 눕는다. 여덟 살 어린이는 엄마를 부르지 않고 화장실에서 용변 뒤처리와 샤워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아침도 차려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집에 혼자 있을 나이는 아니다.
토요일 오전 열한 시, 여덟 살 어린이와 간만에 집에 갇혔다. 카드 게임도 하고 라면도 끓여 먹었다. 시작하면 한 시간은 기본인 보드게임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에게도 열과 성을 다해 아이와 놀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그 시절을 보냈고 이미 그 시절의 끝자락에 와 있다. 과하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니, 다른 애를 써야 한다. 첫째는 부모에게 신앙의 ‘주님’은 물려받았으나 삶을 구원할 ‘주님’, 건물주님으로 거듭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슬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국어를 포함한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 생업인 엄마와 한집에 살고 있으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내게 애쓸 것을 요청했다. 자식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죽었던 애인이 살아나는 일 이상으로 반가운 일이나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공부와 진학의 애, 그 애먼 애의 문이 열린 것이니까.
지난 일 년여 동안 첫째는 확실하게 공부를 했다. 수학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공부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스스로 학습했다.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그 아이 입에서 난데없는 소리가 튀어나올 때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내가 놀았을 때 말이야, 중1, 중2 때, 엄마가 나한테 공부하라고 했으면,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성적을 올릴 수 있었는데.” 허허. 그 시절 놀았던 것이 자기주도 학습의 밑거름이라고 웃으며 말했던 분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애 본 공은 없다더니, 참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