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적어 두면 힘이 된다 - 둔필승총

by 박쥐마담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막내가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어른한테 선물 안 줘?” 아홉 살을 앞둔 막내의 질문에는 ‘그런데 말입니다’의 어조가 배어 있었다. 나는 막내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김상중보다 더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으려면 조건이 두 개 있다. 울면 안 되고,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는 걸 의심하면 안 된다. 어른들은 어지간해선 잘 울지 않지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는 걸 믿지 않기 때문에 선물을 못 받는다. 어른은 아니지만 그 믿음을 잃어버린 너의 형과 누나도 선물을 못 받은 지 꽤 되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너도 선물을 못 받을 수 있다. 막내는 마지막 말에 광명을 찾은 듯 해사한 얼굴이 되었다. “나야 믿지. 믿고말고.”


나는 어른이고 산타를 믿지 않는데도 선물을 받았다. 크리스마스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내 집 아이들의 초등학교 겨울방학 5주간 삼시 세끼를 제조할 특명이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 작년 이맘때는 막내가 어린이집을 다녔고 2주 방학만 어찌어찌 버티면 되었다. 그때가 좋았구나!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첫째는 예비 고1이 되어 수학 학원을 중2 때 피시방 드나들듯 무시로 들락날락했다.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딱 차려진 밥상을 받고 숟가락 내려놓자마자 부리나케 학원으로 돌아가니 외식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중학생이 될 둘째는 불러도 대답은 없고 제 방에 틀어박혀 있지만 밥때만 되면 기어 나왔다. 다른 집 딸들은 사춘기라 다이어트를 한다는데 내 집 딸에게선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막내는 밥그릇 싹싹 비우는 것은 기본이고 설거지하고 한숨 돌릴 만 하면 간식을 찾았다. 이런 날들이 오늘로 3주가 지나갔다.


엄마표 집밥 신화를 신봉하던 때도 있었으나 3년 전 재취업하면서 그 시절은 끝났다. 그렇지만 인스턴트 음식이 몸에 좋을 것 없는 줄은 이미 알고 있고 매끼 사 먹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드니 그것도 별로다. 그러니 영양과 비용을 따졌을 때 다시 집밥으로 돌아오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집에는 사료만 먹는 털복숭이 남의 자식이 있는데 삼시 세끼 같은 밥만 먹어도 어쩜 그리 맛나게 먹는지 모른다. 인간은 다르다. 식성도 제각각이고 불만을 조목조목 말한다. 초간단 반찬인 미역 줄기 볶음이라도 하려면 염장한 미역 줄기를 물에 담가 짠 기운 없애고 씻어 헹군 뒤에 썰어서 마늘 다진 것과 볶아야 하니 최소 3단계는 거치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성을 기울여 볶아놓아도 자식 셋 중 둘에게는 외면당한다. 그들을 위해서는 다른 반찬을 하나 더 준비해야 불평을 듣지 않는다. 다음 끼니에 그 반찬들만 다시 상에 오를 경우에도 반응은 좋지 않다. 다음 끼니엔 상에 오르지 않았던 새로운 음식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렇게 밥 공장은 계속 돌아가야 한다. 5주 35일 245번의 식사를 제공해 자식 셋을 만족시키는 것, 별일 아닌 듯해 보여도 은근 어렵다.


집돌이인 막내는 집에 있으면 좋다고 한다. 일명 집돌이다. 아침에 일어나 사과 반 쪽과 토스트를 먹으며 EBS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두어 시간 동안 레고로 만들기를 한다. 요즘은 자판기 만들기에 재미를 붙여 동전이나 구슬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다른 구멍에서 나오는 구조물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오전에 깨면 다행인 누나와 잠시 옥신각신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레고를 하거나 엄마 또는 누나와 보드게임을 한다. 태권도를 다녀온 뒤에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뒤 아침에 봤던 EBS 어린이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보고, 연산 문제집을 한 장 풀거나 그림일기를 쓴다. 잠자기 전에 어린이 성경을 두어 장 읽고 하루를 마감한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단다. 집에서 밥 세 끼 먹으며 지내는 하루가 가장 좋다고 하니 그리 들어주기 어려운 소원도 아니다. 내가 5주 35일 245번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아이는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식탁 한쪽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문장들을 만든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쓴다. 그러다가 식탁을 차릴 시간이 돌아오면 조리 과정이 간단하면서 영양가 있는 끼니를 만들며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방법을 연구한다. 아이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지만 나는 아이의 행복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나와 비슷한 딜레마에 처해 있는 지인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마음은 온통 미래에 해야 할 일에 가 있는데 방학을 맞은 두 자녀를 돌봐야 하니 귀찮고 짜증이 났다고 했다. 이삼일 동안 부정적인 감정에 눌려있다가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아이와 배드민턴 치는 것에 집중했더니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았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을 위로하고 싶었다. “글보다 삶이 먼저입니다. 그러면 글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거예요.”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삶을 산다고 해도 글은 노트북 앞에서 시간을 보내야 나오니까.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시간 도둑과 싸우는 소녀 모모의 이야기다. 읽어 보지 않았지만 어떤 내용인지 한두 줄로 설명할 수 있는 책들이 있는데 <모모>도 내게 그런 책이었다. 선생님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다음 날, 2020년의 첫 책으로 <모모>를 읽었다. 호라 박사의 시간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한동안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오늘도 장을 보고 세 끼를 준비하고 차리고 먹고 치우면서 식탁 끝에서 한 단락의 글을 썼다. 모모처럼 주어진 모든 시간을 가슴으로 느낄 수는 없기에 얼른 해치워 버려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수영장 가기 20분 전에 수영 모자 잃어버렸다는 말을 꺼내는 아이 앞에서 짜증이 확 치밀어올랐다. ‘내 소중한 시간을 네가 필요한 물건 찾는데 쓸 마음의 여유, 이 저녁에는 없거든?’ 아이에게 소리내어 말을 하진 않았지만 서랍을 요란하게 여닫았으니 몸과 행동으로 말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을 가슴 깊이 소중하게 느끼는 ‘불면인’이 아니라면 새벽이나 늦은 밤에 노트북 앞에 앉을 텐데. 막내가 출출하다고 하니 일단 치즈 토스트를 만들어주고 잘 준비를 해야겠다. 방학은 아직 2주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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