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전에 친구들과 작업실을 얻었다. 왕복 세 시간 거리의 학교에 출강을 하고 받은 강의료를 삼 년 동안 아껴 모으니 천만 원이 되었다. 내 몫의 보증금으로 그 천만 원을 넣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다달이 월세를 내며 글을 쓰겠다는, 나름의 도전이었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에는 멀쩡한 집을 놔두고 호텔로 가는 여자가 나온다. ‘호텔’ 하면 바람이고 불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내용이 아니다. 여자는 낡은 호텔에 종일 혼자 머물다 집으로 돌아온다. 뭘 특별히 하지도 않는다. 그냥 거기 머물다 온다. 그러다 파국을 맞는다. 내가 3년 전부터 글을 쓰지 않았다면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처럼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나를 살렸다. 남도 살리는 글을 쓰고 싶어서 8개월 동안 부지런히 작업실을 들락거렸다.
작업실에서 다듬은 첫 번째 원고는 책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원고는 책이 될 예정이다. 출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출간이 미뤄지긴 했지만, 두 원고 모두 1교를 마쳤다. 네 번째 원고는 엊그제 초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원고를 기획 중이다. 월세의 힘은 무섭고도 대단했다.
월세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를 만날 줄 몰랐다. 출강을 하지 못하니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작업실을 유지하기 어려워져 건물주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늘, 작업실에 들어올 새 세입자가 정해졌다. 돈의 부담에서는 벗어났지만 당장 갈 곳이 없어졌다. 집에서는 ‘사회적 거리’라고는 없는 아이들이 수시로 엄마를 찾는다. 집 밖에서 마스크에 의지해 불특정 다수와 함께할 강심장도 못 된다. 이래저래 난국이다.
안네 프랑크, 프리모 레비, 신영복의 책을 읽어야겠다. 벽 너머에 갇혀서, 나치 수용소에서, 감옥에서 글을 쓴 작가들의 문장에 길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또 어딘가에서 문이 열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