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개월 전, 작업실 잔금을 치른 날은 월요일이었다. 작업실로 직행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출강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강의를 하면 큰돈은 못 벌어도 작업실 월세는 벌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애인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이들 등교 준비를 시키고 나도 사람 꼴을 갖춘 뒤 막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막내와 헤어지고 잽싸게 작업실로 향했다. 뛰진 않았지만 뛰는 듯 걸었던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으면 글이 술술 써지겠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작업실 건물 바로 앞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버스가 정차하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은근히 귀에 거슬렸다. 손을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녹물 냄새가 났다. 조명이 좀 어두운 것 같은데 전구를 더 끼울까 말까... 자꾸 트집을 잡으면서 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낯설고 우스웠다. 이삼일 그러고 난 뒤에야 알았다. 새 공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이제는 작업실을 쓸 수 없다는 상황에 적응해야 할 차례인데, 쉽지가 않았다. 집 식탁에서 글을 쓰면 자꾸만 노트북 화면 너머의 싱크대 얼룩에 집중하기 일쑤였다. 안방에 놓은 작은 접이식 책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단 배열을 바꾸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베개 커버를 바꾸고 있었다. 처음엔 집중력 탓을 했다. 집중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얄팍한 집중력으로 써 놓은 결과물이 꽤 있으니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또 다른’ 작업실이다. 나는 그 작업실의 수석 작가로, 가족들이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한 각종 작업을 한다. 그 작업은 분량과 강도가 상당해서 여차하면 글 작업에 쓸 기운과 시간도 잡아먹는다. 게다가 지금은 바이러스가 창궐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니 집에 혼자 있을 수가 없다. 방역 전선에 투입된 공무원, 의료진도 아닌데 수시로 호출을 당한다. 이래서는 글을 쓸 수가 없다.
혼자 쓸 작업실을 얻을 여유는 없지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작업 공간이라도 확보해야겠다 싶었다. 학교 강의가 없는 날 아이들 점심을 일찍 주고 오후에 몇 시간 동안이라도 집중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도서관은 모두 닫혔으니 갈 수 있는 곳은 카페뿐이었다. 내친김에 조건을 적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
좌석이 여덟 자리 이내인 곳
손님이 많이 오가지 않는 곳
시끄러운 음악을 틀지 않는 곳
화장실이 깨끗한 곳
밝고 햇빛이 잘 드는 곳
커피가 비싸지 않은 곳
이런 카페를 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것 같다. 장사가 잘되려면 회전율이 높아야 하므로 사람 왕래가 빈번한 목 좋은 곳에 판을 벌이는 게 상식이다. 망하기 직전의 카페에서 글을 쓰면 되겠네, 구시렁대던 중에 문득 생각나는 곳이 있었다. 옆 동네 골목길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카페였다. 2번부터 7번까지는 직접 카페에 가서 확인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세상에, 모두 합격이었다. 심지어 카페 이름은 ‘더불어 행복한 곳에’ 였다. 사장님, 망하지 마세요. 제가 열심히 오겠습니다. 더행카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