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부지런히 쓰고 고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이 아직 출간된 건 아니다. 첫 번째 책의 계약서를 쓰고 1교를 마쳤을 무렵 바이러스의 공포가 전국을 강타했다. 출간은 가을로 연기되었다. 두 번째 책은 3교를 마쳤으나 역시 바이러스로 인해 출간이 미뤄진 상태다. 책이 제때 나왔으면 조금 으쓱했을 거다. 아파트 입구에 현수막을 걸고 대놓고 자랑하지는 않아도, 동네 서점에서 내 책을 주문하면서 “이 책 저자가 접니다”하는 너스레를 떨어봄직도 했는데. 때가 되면 나오겠지, 순리대로 되겠지, 다시 새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책은 <학교에서 배우는 글쓰기(가제)>다. 지난 3년간 학교에 출강하면서 고등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던 내용을 글로 정리했다. 그 시간 동안 학생들만 글을 쓴 게 아니다. 나도 글을 썼다. 학교에 재취업할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비로소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글쓰기를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울분이 풀렸고, 생각이 정리되었고, 정리된 생각을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걸 경험했으니 나만 누리지 말고 학생들에게 전파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수업은 국어 선생에게는 꿈과 같다. 고등학생들은 거의 성인 수준의 글쓰기가 가능하다. 글쓰기를 통해 학생들의 언어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글쓰기를 하면 관찰력, 탐구력, 창의력, 논리적 사고력은 당연히 길러질 수밖에 없다. 다섯 개 중에 하나를 정답으로 고를 수 있는 능력은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 필요할 뿐, 그 너머의 세상에서는 무용하다. 그러나 학생들은 당장 입시에 발목 잡혀있는 처지이므로 글쓰기만 가르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수밖에. ‘진도’를 나가기 바쁜데 글쓰기도 짬짬이 가르쳤다. 고등학교 1학년은 국어 수업과 연계해 에세이를 쓰게 했고, 고등학교 2학년은 문학 수업 진도를 최대한 빨리 나간 뒤에 두 달 동안 소논문을 작성하게 했다. 학생들에게 글을 쓰게 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지자 학생들은 자기 생각, 감정, 주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돈되지 않은 글이 쏟아졌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배운 작문 지식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배운 지식을 활용해 글을 쓰고, 그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은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감정은 격하게 분출되었으며 근거 없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메아리쳤다. 읽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30분 일찍 출근해 학생들의 작문 노트에 답글을 달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학생들이 쓴 에세이를 읽었다. 주말 오후, 소파에 늘어져 있어야 할 시간에 학생들이 보낸 이메일을 열어 논문 개요를 검토했다. 사서 고생이요 생고생이요 생쇼였다. 진실로 글쓰기 수업은 국어 선생에게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수업이었다. 시간과 에너지를 끝도 없이 잡아먹으니 아예 시작을 말았어야 했다. 내가 자괴감에 빠질 무렵 학생들의 글이 조금씩 정돈되기 시작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글, 현실의 문제를 고발하고 내일을 바꿀 수 있는 힘이 깃든 글이 나왔다. 수업을 수강한 학생 모두의 글쓰기 실력을 끌어올리진 못했지만,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준 덕분에 세 번째 책을 쓰고 있다. 남이 한 수업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한 수업을 설명하는데 어쩜 이렇게 글이 안 써지나, 자꾸 이마 주름이 깊어지긴 하지만, 쓰고 고치는 중이다. 학생들에게 설명한 대로, ‘쓰는 게 1이면 고치는 게 9다’ 법칙에 따른다. 바이러스가 만드는 숫자의 널뛰기에 휘둘리지 않고, 오늘도 내 자리에서 하루 치 분량만큼 쓰고 고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