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시간에 글쓰기를 배우다>
나는 대안학교 고등부 국어 강사다. 직업을 밝히면 종종 수업과 관련된 질문을 받는다. “대안학교에서는 국어 수업을 어떻게 하나요?”, “일반적인 고등학교나 학원에서 하는 수업과는 뭐가 다른가요?” 이런 질문에 자신감 충만한 미소를 지으며 “공교육과 사교육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질적으로 완전히 차별화된 수업을 합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대답은 꿈속에서나 가능하다. 학생들은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대부분 대학 진학을 희망하니, 그들이 입시의 관문을 통과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강조점을 염두에 두고 수업 지도안을 작성하고 국어 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한다. 대한민국의 여느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과 마찬가지로 ‘진도 나가기’ 바쁘다.
입시 공화국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입시에 발목을 잡혀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서 몇 년 뒤를 내다보기 어렵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든 그렇지 못한 학생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학생들보다 먼저 태어나 인생을 좀 더 살아본 ‘선생’의 눈에는 그 너머가 보인다. 삶에는 넘어야 할 고비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게다가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맞이할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은 듯하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고 정서적 유대감을 얻을 수 있는 관계를 맺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울한 미래에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나의 자존을 지키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거창하고 심각하지만 답은 간단하다. ‘글쓰기’가 답이다. 글쓰기는 나를 나 되게 한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거나 고통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글쓰기는 치유의 마법을 발휘한다. 그뿐만 아니라 글을 통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배제와 혐오, 차별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쓴 글은 약자를 구하기도 한다. 게다가 글쓰기는 돈이 된다. 원고료와 인세는 기본이고 강연료에 구독료와 광고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에 글쓰기 책이 빠지지 않고 글쓰기 강연과 소모임이 활성화 된 것은 글쓰기가 나만의 답이 아닌 많은 이들의 답이라는 증거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이후에 돈 내고 시간 들여 글쓰기를 배울 게 아니라 지금 여기, 학교에서 배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국어 교사에게 글쓰기 수업은 ‘로망’이다. 이상이요 꿈이다. 학생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기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최고의 국어 수업인 셈이다. 그런데 제정신으로는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외려 ‘노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 수업은 말 그대로 학생들이 글을 쓰는 수업이다. 입시가 코앞인데 글을 쓰자고 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헐.”이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지식을 설명하고 문제 풀이 해설을 해 주는 수업이 (따분하고 지루해서 졸려도)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기승전-입시’가 이렇게 무섭다. 교사는 당연히 진이 빠지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작문 지식만 가르치거나 학생들에게 수행평가 과제로 글 한 편 제출하게 해서 채점하고 끝내는 편이 속 편하다. 그 채점마저 공정성 시비 논란에 휩싸일 여지가 많으니 아예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글쓰기 수업의 핵심은 피드백이다. 팔짱을 끼고 앞에 서서 ‘네가 글을 쓰면 나는 점수를 주겠다’고 노려보지 않고, 학생이 글을 쓰는 과정을 함께하며 옆에 앉아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 준다. 교사가 적절한 피드백을 주면 글쓰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학생도 글을 쓴다. 피드백은 교사와 학생을 새로운 관계로 묶어준다. 그 관계에서 진솔하고 완성도 높은 글이 탄생한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피드백의 마법이다.
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을 대상으로 3문장 쓰기, 에세이 쓰기, 소논문 쓰기 수업을 했다. 오감을 사용해 주변을 관찰한 내용을 쓰는 3문장 쓰기에서 출발해 가벼운 미셀러니와 묵직한 에세이 쓰기를 거쳐 다섯 장짜리 소논문 작성에 이르기까지 학생들도 나도 애를 많이 썼다. 학생들은 글 한 편 써서 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글을 고쳐서 다시 내라고, 또 고쳐서 또 내라고 하니 난감해했다. 나는 나대로 전쟁을 치렀다. 빚 독촉을 하듯 학생들에게 글을 받아내다 보면 진이 빠졌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졸음과 싸우며 학생들의 글을 읽었고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 10분을 아껴 학생들의 공책에 피드백을 적었다.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생쇼’를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내 미래에 대한 대책도 없는데 주제넘게 학생들의 미래를 고민한 대가가 이건가,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전쟁터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니 어떻게든 학기를 마쳐야 했다.
학생들은 천천히 글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어설펐고 과정은 지루했지만 학생들은 글쓰기 수업을 통해 지식을 주입받는 대상에서 콘텐츠를 창조하는 주체로 조금씩 변했다. 자신만의 빛깔로 수놓인 문장을 풀어냈다. 감성적인 글을 쓰는 데 만족하지 않고 논리적인 글쓰기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글, 현실의 문제를 고발하고 내일을 바꿀 힘이 깃든 글이 나왔다. 비로소 학생들에 대한 나의 부담과 걱정도 줄어들었다.
교사는 공개수업이나 연수에서 다른 교사의 수업을 보고 좋은 점을 발견하면 바로 자신의 수업에 적용한다. 저 수업을 내 수업에 어떻게 쓰면 좋을지 직감적으로, 직업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내 글쓰기 수업을 다른 선생님들 앞에 열어놓으면 다른 교실에서 또 다른 빛깔의 글쓰기 수업이 펼쳐지리라 믿는다. 오늘도 묵묵히 학생들을 위해 독특한 개성과 빛나는 삶의 철학이 깃든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들께 응원을 보낸다. 가르치는 현장은 각기 달라도 학생들이 자기 삶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교사들이 계속 도전하고 용기를 낸다면, 언젠가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글쓰기 수업이 로망도 노망도 아닌 일상이 될 날이 오리라. 그날을 꿈꾼다.
(6개월간 작업한 원고의 서문입니다. 2020년의 절반이 꿈결처럼 흘러갔습니다. 길몽보다 흉몽, 악몽인 날이 더 많았지만 끝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