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 휴업

기다리는 날

by 박쥐마담

오후 2시. 주중에 이틀은 꼭 들르는 단골 카페에 왔다.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공간에 손님은 달랑 나 한 명이다. 원래 자리를 잘 안 지키는 사장님은 친구인지 손님인지 모를 분 배웅을 나가셔서 카페는 졸지에 개점 휴업 상태다.


나도 딱 이 카페 같은 처지다. 육 개월을 붙들고 있었던 원고를 정리해 출판사에 이메일로 보낸 게 닷새 전이다. 원래 계획은 이달 말까지 알차게 검토를 할 생각이었다. 문단과 문단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조사와 어미 사이까지 샅샅이 훑으려고 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원고의 핵심 키워드가 도드라지도록 목차를 다듬고 나니 웬걸, ‘교정욕’은 급격히 치솟는 기온에 정확하게 반비례했다. 그러면 그렇지, 밥도 짓고 글도 짓는 처지에 뭐든 열과 성을 다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는 것, 그래서 ‘반만 합니다’를 좌우명으로 삼은 걸 잠시 깜빡했다. 자꾸 만질수록 글은 더 매끈해진다는 걸 모르지 않기에 메일을 쓰고 원고를 첨부한 뒤 발송을 누를까 말까 주저하다가, 내일 일기예보를 보고 화살표를 눌렀다.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온다잖아. 축축과 끈적에 대비해야지.


다음 날 아침 9시 47분에 답 메일이 왔다. 원고를 받고 바로 출력해서 읽는 중이라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기다리는 것뿐.


원고를 보낸 다음 날과 그다음 날은 수업이 다섯 시간씩 있었다. 종강까지 5주 남았는데 아이들도 나도 어떻게든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믿고, 진도의 압박을 견디면서 매시간을 버텼다. 앞에서 마스크를 쓰고 말하는 나와 역시 마스크를 쓴 채 말하지 못하고 듣기만 해야 하는 아이들 모두 그저 견딜 뿐, 특별한 묘수가 없었다.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원고에 대한 피드백을 기다리는 처지라, 텁텁하고 갑갑한 수업이라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평가를 받는 건 두려운 일이다. 거절과 실패는 실망과 좌절을 부른다. 오늘까지 살면서 다양한 종류의 거절과 실패를 경험했고 그 결과 내 인생길에는 실망과 좌절의 시커멓고 찐득한 타르가 군데군데 찍혔다. 지워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그 볼썽사나운 자국들이 굳으면 아스팔트처럼 단단한 포장도로가 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거절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더 단단해진다. 그걸 아는데도, 아니, 알기 때문에 무서운 거다. 인생길에서 그냥 좀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구간도 있으면 좋겠다.


아이를 셋 키우면서 그런 구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0에서 3세까지다. 정작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천 일의 시간. 그 시간은 부모와 이웃, 사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우리 모두는 그 시간의 수혜자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 도움의 선순환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세상은 좋은 곳이 된다. 그래, 그런 선순환을 이루려고 이다음에 돈 내고 글쓰기를 배울 게 아니라 국어 시간에 공짜로 글쓰기를 배우자는 책을 썼지. 그러니까 제발, 이번엔 타르 말고 꽃길이면 좋겠다.


주말에는 신나게 놀고 싶었는데 9월에 출간할 책의 최종본이 나왔다고 해서 아침 일찍 스타벅스로 건너가 원고 검토를 했다. 점심으로는 얼갈이배추 된장국을 끓이고, 두어 시간 뒤에 간식으로 김치 볶음면을 해 먹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원고를 열심히 쓴 만큼 주방에 적게 머물렀더니 손에 닿는 곳마다 끈적끈적하다. 아스팔트가 되지 못하는, 투명한 타르 방울들이 주방을 점령했다. 하루 날을 잡아 닦아야겠지만, 원고 피드백을 기다리면서 주방 기름때와 씨름하고 싶진 않다. 거절 통보를 받았을 경우, 반짝이는 수납장 표면을 보면서 결국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생각할지 모르니까. 대신, 어려서부터 주방 수호신이 되겠다고 선언한 결과 코로나19로 주방에 유폐된 여동생을 불러내 간만에 회포를 풀었다.


일요일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는 책 서너 권을 읽고 메모를 했다. 책장을 좀 넘기다가 전화기를 흘끗거리고, 이메일을 체크하길 수십 번은 한 것 같다. ‘출판사 대표님은 거절 통보를 하면서도 자세한 이유를 달아 줄 분이니, 답신을 참조해 원고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고친 뒤에 다른 출판사를 두드려봐야겠지.’ 바람과는 반대로, 원치 않는 상황을 상상하는 게 그나마 마음을 덜 다치는 방법이라서 최대한 쭈그러져 있다. 언제쯤이면 여유만만, 호기롭게 기다릴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동안 카페에서는 나 외에 다른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야 마스크 벗고 카페를 전세내어 좋지만, 사장님은 오늘 장사를 공쳤다. 내일은 장대비가 쏟아진다는데 이틀 연속으로 개점 휴업이면 못 쓴다. 한 시간쯤 있으면 다시 저녁밥을 지을 시간이 돌아오니까,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해야지. 기다리며 보낸 하루였지만 끝까지 공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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