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쓰는 자리로

오마이뉴스 첫 투고

by 박쥐마담

2020년 상반기, 바이러스와 싸우며 쓴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중간 과정 생략하고 근 한 달 만에 답이 왔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출판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님께 재미있고 잘 읽힌다는 평을 들었고, 아쉬운 지점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다. 말씀을 들으면서 원고를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자세하게 말씀을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 말씀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어떨까요 했더니 “정 선생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하셔서 함께 한바탕 웃었다.


그렇지. 나는 다 계획이 있다. 문제는 체력과 시간이지.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에너지와 여유가 빤하다. 나처럼 미성년자의 주 양육자면서 비정규적으로 일하는데 짬짬이 글을 쓰려면 에너지 효율이 무척 높아야 한다. 가전제품에 붙어있는 1등급 정도로는 어림없다. 그런데 바쁘고 정신이 없으면 글이 딱 설익는다. 글을 쓰기 전에 생각의 덩어리를 조물조물 만지다가 잠시 던져놓고, 다시 건드려 보았다가 모양을 잡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설익은 글도 나름의 효용이 있다. 글은 어떻게든 써야 좋아진다. 하지만 책상에 앉는다고 항상 완성도가 높은 글이 되는 건 아니다. 어설픈 글이라도 써야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나중에 읽어보면 이상하고 어색한 부분이 보인다. 천천히 고치면 된다.


7월 한 달 동안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시간이 나면 읽어야지 하고 점찍어 놓았던 책을 몇 권 보았다. 1990년대 박완서 선생님의 인터뷰를 묶은 <박완서의 말(마음산책)>에 딱 그 부분이 있었다.


“어느 정도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취미로 하기엔 글 쓰는 건 힘들어요. 요즘 여자들 글 쓰고 싶어들 하지요. ...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는 게 지금까지 오래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거 같아요. 경험이 누적돼서 그것이 속에서 웅성거려야 해요.”


‘코로나19 학기’를 마치고, 귀한 방학을 맞아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한 달에 한 번, 큰아들 학교에서 학부모 독서 모임을 하는데 마침 짬이 나서 회원 학부모와 아들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이번 학기에 출강하는 학교 학생들에게 내주었던 글쓰기 과제를 동일하게 내 주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으로 수업 계획을 짰다. 과제를 공지하면서 “어머님들도 이번 기회에 한번 글을 써 보시면 아들에 대한 역지사지도 되고 좋을 것 같네요.” 했는데 은근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가만, 그럼 나도 써 볼까?


썼다. 쓴 김에 오마이뉴스에 회원 가입을 하고 투고를 했다. 헤드라인이 수정되었고 서브타이틀도 하나 더 추가되어 실렸다. 원고료 1만 5천 원을 벌었다. 예상치 못한, 지인들의 격려금도 받았다. 글을 쓰니 돈이 벌리고, 사랑은 돈을 낳았다. 돌고 돌아 내가 올 자리는 쓰는 자리였다.


http://omn.kr/1oj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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