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에서 해빙기로

<아무튼, 목욕탕>을 성책하기까지

by 박쥐마담

가을이 끝나는 비가 내린다. 젖은 버즘나무 잎이 로터리 바닥에 쫙 깔렸다. 조직 생활의 모토는 젖은 낙엽처럼 착 붙어있는 거라던데, 나는 학교에서는 깍두기이고 집에서는 느슨한 엄마다. 동네 지인들 네트웍에서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다. 최근에는 교회도 옮겼다. 한마디로 조직에 충실할 줄 모른다.


2,30대에는 꽤나 조직에 충성, 아니 영혼까지 바치려 했다. 사람들과 함께 성과를 내는 것이 즐거웠고, 체력이 짱짱하진 않았어도 그럭저럭 몸이 받쳐주었기에 온갖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평생 청춘일 줄, 늙지 않을 줄 알았다.


손에 상처가 나면 잘 아물지 않고, 이마에 가로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게도 중년이 찾아왔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 젊은 척, 생생한 척 했다. 아마 있어보이고 싶은 ‘가오의 강박’ 때문이었을 거다.


과도하게 에너지를 끌어다 쓴 부작용은 2016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생 암흑기의 문이 열렸다. 온통 깜깜한데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니 무섭고 떨렸다. 여기서 “주님이 날 살리셨어요.”라고 간증하면 좋을 텐데, 그분은 삐진 막내처럼 입 꾹 다물고 한 마디도 안 하셨다(배신감도 추가).


그때까지 나는 나 자신을 고통을 극복한 사람으로 여겼다. 삶을 자발적, 주체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했고 아침마다 ‘긍정의 힘’이 넘쳤다. 암흑기에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쌓았던 자존감을 야금야금 깎아먹었고 이제 더는 털어낼 것이 없을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그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쓸데 없는 얘기, 좌충우돌한 얘기, 원대하진 않아도 소소하게 감격스런 얘기... 그렇게 메일을 쓰다 보니 잊고 있던 꿈이 기억났다.


암흑기에 쓴 글들이 한 권씩 책이 되어 나오는 걸 보면서 이제 내 인생의 해빙기가 왔구나 싶다. 코로나19로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기에 붙들려있는 이들에게 내가 되찾은 밝고 따스한 기운을 전해드리고 싶다.


<아무튼, 목욕탕>은 투고 원고로 시작해 책이 된 케이스다. 투고 원고에서 가능성을 발견해 주신 도서출판 위고의 조소정 님이 아니었다면 이 글은 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천재 소설가 이상도 아닌데 무의식의 흐름으로 왔다갔다 하는 내용들, 여과되지 않은 격한 감정 표현들을 짚어준 친구 강현아에게도 감사한다. 이렇게 쓰니 무슨 연말 시상식 수상소감 같은데,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분들의 꿈은 자신의 글을 성책하는 것일 테니 널리 이해해 주실 거라 믿는다. 어리바리한 저도 해 낸 일이니, 다른 분들도 하실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겨울이 온다. 글을 쓰기에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