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원고를 준비하며
매일 한 줄이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강박에 가깝다. 지난 3년 동안 그 강박을 연료로 태워 글을 썼다. 강박은 짐이면서도 힘이기 때문에 눈은 뻑뻑하고 어깨는 누가 올라탄 것 같아도 노트북 앞에서 벌을 서듯 글을 썼다. 그렇게 쓴 글이 원고로 묶였고 운이 좋아 출간도 되었다.
새해에 마지막 원고 뭉치를 털어 출판사를 두드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전처럼 나를 설명할 말이 한 마디도 없는 상태는 아니지만, 역시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제가 묘지에 대한 글을 썼는데, 한번 읽어봐주시겠어요?' 묘지라니, 바이러스를 피하느라 정신없이 한 해를 지냈는데, 묘지라고? '네. 저는 묘지를 순례하는 사람이거든요. 드라큘라와 같은 집안 사람은 아니고요...' 조금 생각만 해도 난감하다.
묘지 원고는 3년 동안 글을 쓰면서 내 기운과 시간, 정성을 가장 많이 앗아갔다. 그 원고를 떠나보내야 새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2021년 상반기에 묘지 원고를 성책하려고 한다. 가능성이 있다고 격려를 들은 첫 원고인 동시에 고쳐 써서 다시 출판사를 두드렸으나 외려 거절을 당한 원고이기도 하다. 단행본 두 권을 내고 전보다 조금 문장이 좋아졌으니 새해 새 마음으로 새 출판사를 두드려 보려고 한다.
아파트 입구에 서 있는 벚나무 가지는 이미 꽃눈으로 가득하다. 가지에 앉은 직박구리는 뾰족한 울음소리를 연발한다. 일종의 신호 같다. 내멋대로 해석하자면, 봄에 이 나무 가득히 필 꽃을 상상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벚꽃 가득히 피는 날, 자주 가는 묘지를 천천히 걷고 싶다. 망자에게 인사를 전해야지. 당신 덕분에, 당신의 묘지 덕분에 나는 살았다고. 살아봤자 백 년인 인생이고 이미 그 백 년의 절반을 써 버렸지만, 그래서 더욱 하루씩 감사하게 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