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고 불리면 부끄럽고 좋다
2021년 11월 19일, 편집자님께 문자를 받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수능 다음날이라 수업 분위기는 무거웠고 그 분위기에 눌려 내 마음도 착잡했다. 삶을 위한 문학과 입시를 위한 문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나날, 내 수업은 과연 입시가 임박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인지 혼란스러워 출근길 발걸음이 이보다 더 무거울 수가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애먼 데로 튀지 않고 출근했고, 학생들에게 에세이 쓰기 과제를 설명했다. 점심을 먹고 한숨 돌렸을 때 날아온 편집자님의 문자는 11월 19일을 내 생애에 다시 오지 않을 날로 바꾸어 놓았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열다섯은 안녕한가요>> 중쇄 준비에 들어간다는 반가운 소식 전해 드려요!"
글을 쓰는 이들의 소원은 인터넷 서점의 검색창에 내 이름을 넣었을 때 검색되는 책이 한 권이라도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의 소원은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나름 절실한 바람이다. 책을 돈을 주고 사서 읽겠다는 사람이 작가의 가족과 일가친척, 친구와 선후배, 지인 등 작가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의 범위를 넘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출판사는 작가에게 계약서를 내밀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가 아무리 심사숙고해서 계약을 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책을 출판했다고 하더라도 1쇄가 다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 세상만사 예측불허 법칙에다 복불복의 원리까지 작용하니까. 그런데도 나를 밀어준 우주의 기운이 너무 고마워서, 편집자님의 문자에 외마디로 답을 해 버렸다.
"꺆!"(너무 흥분해서 맞춤법도 틀렸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함께 생고생을 해 준 편집자님과 함께 기쁨을 나눈 순간,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가 겹쳐졌다. <중쇄를 찍자!>는 새내기 편집자 쿠로사와 코코로가 만화 잡지사 바이브스에 취직해 편집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이다. 새로 데뷔한 신예 작가들이 잡지에 연재하던 만화를 묶어 단행본을 출간하고, 그 단행본이 잘 판매되어 중쇄를 찍게 될 때 편집부 직원들의 호들갑은 말로 다 못 한다. '꺆'은 애교지. 중쇄 소식을 직접 만나서 들었으면 편집자님 손을 붙잡고 강강수월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작가라고 불리면 부끄럽다. 내 글과 비교할 수 없는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이 너무 많아서 민망하다. 그분들은 대작가로, 나는 소작가로 불러주면 덜 불편할 것 같은데... 하지만 작가라고 불리면 좋다. 지금까지 책상 앞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다. 위대하고 거룩한 이야기는 쓸 수 없어도, 소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는 쓸 수 있다. 역시 소작가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