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만드는 마음

투고를 묶으며

by 박쥐마담

<<열다섯은 안녕한가요>>의 3교 점검이 끝난 뒤부터 바로 새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2021년 8월 말이었는데,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아 책상에 앉기만 해도 기운이 달렸다. 하지만 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밀어붙였다. 선계약의 기쁨에 들떠서 청소년 에세이라는 장르에 나름 도전했다가 생각 외로 작업이 쉽지 않아서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면 잘 쓰겠지, 쓰려는 주제에 관한 책도 오십 권 넘게 읽었으니 술술 써질 거라는 믿음도 한몫했다. 2022년 투고를 목표로 4개월 안에 10만 자 분량의 초고를 완성할 계획을 세웠다. 12개의 꼭지로 내용을 구성하고 각 꼭지가 띄어쓰기 포함 8000자 이상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긴 호흡으로 하나의 주제를 충분히 다룰 능력이 된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웬걸,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할 줄 알았는데 계속 미약하기만 했다. 한 문단을 완성하기가 어려운데 전에도 이만큼 걸렸나? 뇌질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했던 말을 반복하는 거지? 참신한 비유가 안 떠오르는데 원래도 이랬나? 대혼란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면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듯 쓸 줄로만 알았다. <<아무튼, 목욕탕>>을 썼을 때처럼, 문장이 샤워기에서 쏟아지듯 끊임없이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열다섯은 안녕한가요>>를 쓸 때와 다를 바 없이, 버벅대고 쩔쩔매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개학을 했다. 학교로 목요일과 금요일, 주 2회 출근을 하는 시간강사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학교 근처에는 창고와 공장, 텃밭만 있었는데 최근에 목공예를 하는 사장님이 작업실 겸 카페를 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1시간 일찍 출근해 그 카페에서 글을 썼다. 한 문단이라도 쓰겠다는 각오로 무조건 앉아 있었다.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 오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 앞 카페에서 글을 썼다. 생각해 보니 지난 4개월 동안 사람을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신 기억이 별로 없다. 세 아이 밥해주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 외에는 내가 가진 시간을 오롯이 초고를 쓰는 데 사용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모두 글을 쓰는 데 쏟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내가 만든 마감을 완수하고 싶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아주 가끔은 온 마음을 다해 애를 쓰는 일이 결실을 맺을 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입시 지옥에서 버둥거리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개미지옥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잘하는 것보다는 어설프게 하는 것이 훨씬 많다. 애석하게도 글쓰기는 아직 그 '어설픈 것'에 포함되어 있지만, 매일 조금씩 쓰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엄마가 글 쓸 때는 말 걸지 말라는, 뺑덕어멈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말을 열 살 막내에게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초고의 후기를 썼다. 종강과 함께 묵직한 원고를 손에 쥐었다. 기본적인 교정을 마친 초고는 지인들의 손에 넘어가 있다.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좀 더 한 뒤에 밝아오는 새해에 투고를 할 계획이다. 내가 만든 마감에 나를 볶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원맨쇼의 유일한 관객이 되어 기립박수를 친다. 오늘은 성탄절, 선물은 이미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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