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일은 겁쟁이로
나는 지금 두 편의 원고 사이에 있다. 한 편은 새해에 출간하기로 계약한 원고다. 이미 초고는 편집자의 손에 들어가 있다. 해가 바뀌면 검토 의견을 달고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수정 사항을 손보고 다시 편집자에게 넘기는 것이 목표다. 또 한 편은 올해 하반기에 완성한 원고다. 맥락이 제멋대로 흘러간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피드백을 받아 수정을 한 뒤에 새해 새 마음으로 투고를 할 계획이다.
투고할 생각을 하니 다시 떨린다. 생명체라고는 눈에 뜨이지 않는 광야 한 복판에서 원고 뭉치를 들고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 원고를 전부 보낼까? 아니면 기획서와 목차, 샘플 원고만 보낼까? 대형 출판 그룹에도 보내 볼까? 아니면 원고의 색깔에 맞는, 작지만 내공이 있는 출판사에 보낼까? 많이 보낼수록 많이 거절당할 텐데, 감당할 수 있을까? 거절당하면 좌절감을 느낄 테고, 좌절감이 차오르면 슬플 테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싶다. 도전하지 않으면 안전하다. 겁쟁이는 상처받을 일이 없다.
사실, 첫 책을 낸 이후 일 년에 두 번은 투고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잘 쓰든 못 쓰든 꾸준히 쓴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원고지 600매 분량의 글을 쓰는데 최소한 4~5개월은 걸리니까 별일이 없으면 일 년에 책 두 권은 너끈히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계도 아닌데 가능할까? 결심할 당시에는 가능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썼다.
겁쟁이는 하루아침에 용기백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완성한 원고가 있으니까 눈 딱 감고 용감한 척하면 된다. 일 년에 두 번만 용감하게 투고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363일 동안 겁쟁이로 살 수 있다.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자판을 두드릴 수 있다. 나같은 겁쟁이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