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자마자 비바 이딸리 단톡방에 대학 병원을 다녀왔다고 보고했다. 이 단톡방에는 8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은 H가 있다. H는 0기로 진단을 받고 대학 병원에서 부분 절제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했는데, 수술 전 검사 과정에서 암이 두 군데에 더 있는 걸 추가로 발견했다. 수술 전날 저녁에 수술 방식이 부분 절제에서 전 절제로 급작스럽게 바뀐 것이다. H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가늠이 안 되었다. 요즘은 전 절제 수술을 하면서 복원 수술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H는 예정에 없던 전 절제를 하게 되어서였는지 복원 수술은 나중에 받았다. H는 수술이 끝난 뒤 가슴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전 절제가 그렇게 무지막지했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H가 겪은 상실감은 하룻밤 사이에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이 결코 아니었으리라.
나는 단톡방에 병원에서 받은 브로슈어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어떻게 종이 한 장 달랑 주면서 환자에게 수술 방식을 결정하라고 할 수가 있냐고 성토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H가 예상외의 말을 했다. “그래도 이런 거라도 주는구나.” H는 선택권이 없이 수술을 받은 거였고, 나는 뭘 선택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선택권이 있는 거였다. 내가 꼭 전 절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의사는 내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 병원에는, 특히 빅 5 병원에는 환자가 넘쳐난다. 실력 있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빼곡한 병원에서 진료실의 미덕은 효율성이 될 수밖에 없다. 의사는 기계가 아니지만 기계처럼 환자를 대해야 무수한 환자를 감당할 수 있다. 환자는 무수한 환자 중 한 명에 불과하므로 개인의 고유성은 진료실 문 밖에 두고 들어오기를 요구받는다. 진료실에서 주어진 3분 동안 의사는 핵심만 전달하고, 환자는 그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그 3분은 환자가 의사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와 신뢰 관계를 쌓기에는 참으로 빈약한 시간이다. 의사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효율을 우선시하는 구조의 문제일 것이다.
브로슈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유방 부분 절제술은 유방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2차 수술을 할 가능성이 10%이고, 3~5주에 걸쳐서 주중 5일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유방 전 절제술은 2차 수술이 거의 필요 없고, 방사선 치료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전 절제술을 받을 경우에는 유방 복원 여부와 복원 방식까지 결정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삶은 다양하다. VIP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느라 병원 근처에는 오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환자가 병원에 자주 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방사선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다. 의사는 환자의 세세한 상황을 알 수 없으니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말해주기 어렵다. 의사가 생각한 최선이 환자에게 반드시 최선이라는 법은 없다. 요즘은 의료 소송도 빈번하다. 환자가 의사의 의견에 따랐다가 수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면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결정은 의사의 몫이 아니었다. 내 몸에 대한 결정은 내가 내려야 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의료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는 못한 것 같았다. 특히 방사선 치료에 대한 부분이 선명하지 않았다. 브로슈어에는 방사선 치료에 소요되는 시간과 부작용은 나와 있었지만 치료에 통증이 수반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H는 전절제를 했으므로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다. H의 지인은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부작용이 꽤 심했다고 했다. 부작용은 개인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항목은 재발 가능성이었다. 전 절제는 흉부나 겨드랑이에, 부분 절제는 유방 그리고/또는 겨드랑이에 재발하지만 재발 확률은 차이가 거의 없었다. 브로슈어 우측 상단에 작은 글씨로 적힌 ‘유방암 치료 효과는 차이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는 굳이 한쪽 가슴 전체를 들어낼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했다.
다음날, 출근길에 병원에서 보낸 문자를 받았다. 검사 일시는 내일 오후였다. 취소 자리 예약이라 추가 변경은 어렵다고 적혀 있었다. 진료도 검사도 누군가 취소해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이 병원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 더 친절한 의료진을 만나러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에 들어간 것일까? 검사를 받으면 나는 어제 만난 의사를 집도의로 선택하는 셈이 된다. 나는 그에게 내 몸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나? 의사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이 병원이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셔도 됩니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다른 병원에 수술 예약을 했고 그 예약이 이 병원에서 잡은 수술 일정보다 빠르다면 굳이 7주를 기다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환자의 불안감을 덜어주려는 나름의 배려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오히려 내 귀에는 “당신이 아니어도 수술하려는 환자는 줄을 섰소.”라고 들렸다. 나는 의사의 말을 그의 의중에 맞게 해석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겨우 3분의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이니까.
8시간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병원에 갔다. 혈액, 소변, 심전도 검사를 하고 흉부 엑스레이를 찍고 유방 영상센터에서 유방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마쳤다. 검사를 마치면서 다른 병원은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병원으로 가서 어느 의사를 만나야 할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도 더 걸리고 거리도 멀어지는 선택을 하기 싫었다. 수술 방식만 결정하면 고민은 끝나는데, 그러려면 방사선 치료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했다. H가 유방암 0기 진단을 받고 부분 절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지인 K를 소개해 주었다. K는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방사선 치료가 힘든 치료인지 알고 싶었다. K가 겪은 부작용은 방사선 부위 피부가 변하는 것 외에 피로감, 두통과 소화불량이었다. 나에게는 어떤 부작용이 당첨될지 모르지만, K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방사선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졌다. 자신의 암 경험을 기꺼이 나눠준 K와 H 모두 고마웠다.
3주 뒤 의사를 다시 만났다. 의사는 수술 방식을 정했냐고 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부분 절제를 해도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의사는 “그래요…”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던 남편의 기억을 빌리면 의사는 “이 정도는 전 절제까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했다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나의 결정과 의사의 의견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두 번째 진료는 전보다 더 짧게 끝나는 듯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 진료실로 건너가려던 의사에게 물었다. “교수님, 0기 암은 반드시 모두 수술해야 하나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멍청한 질문이었다. 수술을 하겠다고 대학 병원에 왔고 수술 방식을 정한 마당에 이런 질문을 하다니. 하지만 나는 의사에게 묻고 싶었다. 겨우 0기 암인데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 억울했기에 나를 수술할 의사에게 직접 답을 듣고 싶었다. 의사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네. 지금으로서는 모두 수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에 먼지처럼 나뒹굴던 복잡한 감정들이 물걸레로 닦은 듯 싹 사라졌다. 고민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