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병원에 처음 방문했던 날, 의사는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오후에 시간 있으세요?” 이게 무슨 말일까. ‘시간이 있으면 커피나 한 잔 하자.’의 시간이 여기서 왜 나오지? 긴장된 마음으로 초음파 검사를 하다가 들을 말은 아닌데… 내가 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의사가 말을 이어 갔다. “저랑 데이트하자는 건 아니고요, 오늘 시간이 있으시면 조직 검사를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시간 괜찮으세요?” 이 말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부위를 찾아냈다는 뜻이다. 환자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녀는 이런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전하면서 조금이라도 환자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애를 쓰는 의사였다.
이 의사는 마음 뿐 아니라 내 지갑의 부담도 덜어 주었다. 맘모톰이 아니라 총 조직 검사로 미세 석회화 부위에서 암을 찾아냈다. 앞으로 암 때문에 얼마의 비용을 지출할지 알 수 없는데 그녀를 만나서 최소 100만 원 이상을 아낄 수 있었다. 내 오른쪽 유방에서 암으로 의심되는 부위를 두 군데 발견했을 때, 의사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했다. 만약에 둘 다 암이라면 수술 부위가 넓어진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의사의 찡그린 표정은 1초만에 사라졌지만 그 순간 의사가 나를 대신해 나의 몸을 염려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암 진단을 문자로 통보 받고 만났을 때, 의사는 내게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이 찍어 주던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그녀의 말은 내 마음에 선명한 응원으로 남았다.
암이라는 낯선 세계의 입구에서 어쩔 줄 모를 때 환자를 배려하는 의사를 만난 것은 행운인 동시에 불운이었다. 나는 의사에 대한 눈높이가 훌쩍 높아진 줄도 모르고 대학 병원에서 요청한 진료의뢰서와 조직검사 결과지, 슬라이드, 검사 영상 CD 등을 챙겨서 W 병원을 나섰다.
이틀은 금방 지나갔다. 암 환자로서 대학 병원 진료를 처음 받으러 가는 날, 남편과 동행했다. 남편은 내가 분당의 W 병원을 갈 때부터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것도 아닌데 뭐하러 굳이 시간을 내서 분당까지 오간단 말인가. 그런데 대학 병원에 갈 때는 생각이 바뀌었다. 긴장을 해서 의사가 하는 중요한 말을 놓치면 어쩌나 싶었다. 총기가 반짝거리던 시절은 지나갔으니 한 사람보다는 둘이 나을 것 같았다. 마침 이날은 남편의 연차휴가여서 부담이 없었다.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내 진료 예약 시간은 오후 4시 15분이었다. 3년 전에 왔을 때와 달리 유방센터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낯선 복도를 한참 걸어 들어갔다. 도착 접수를 하고 진료를 기다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혼자 온 사람은 열에 한 명 정도였고 대부분 동행이 있었다. 엄마 또는 딸로 보이는 보호자가 절반 이상이었지만 남성 보호자도 적지 않았다. 진료실 앞 대형 모니터 하단에는 대학 병원의 명성에 걸맞게 ‘30분 상담지연’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진료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으므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남편은 핸드폰을 들여다 보다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잘 자라, 우리 남편.
진료 대기 5번째 순서가 되자 진료실 근처 대기석에서 기다려 달라는 문자가 왔다. 남편을 깨웠다. 진료실 문 너머에서 내가 만날 의사는 어떤 사람일지, 그에게 어떤 말을 듣게 될지 살짝 긴장이 되었다. 예정된 시간에서 30분이 지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에는 의사가 없었다. 간호사와 전공의가 왼쪽 벽을 바라보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뿐, 정면에 놓인 의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의사는 진료실 두 곳을 오가면서 환자를 보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 벽에 붙여 놓은 침대 위에 어정쩡하게 걸터앉아서 옆 진료실 환자의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설마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까지 아끼려고 의사를 메트로놈처럼 왔다갔다하게 만들진 않았을… 아닐 거다.
옆방과 연결된 문으로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이 사람이 나의 의사라고? 병원 홈페이지에서 본 앳된 얼굴과 잘 연결이 되지 않았다(하긴 나도 출강하는 학교 홈페이지에 10년 전 사진을 올려놓았지). 의사는 내가 W 병원에서 받아 온 조직검사 결과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상피내암이네요.” 상피내…암? 난 유방암으로 진단을 받아서 여기 와 있는데? 의사와 동문서답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진단 받은 날부터 이 자리에 오기까지 닷새가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암을 알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데도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상피내암이 유방암 0기와 같은 뜻이라는 사실조차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다.
“우리 병원 병리 검사실에서 한번 더 검사를 하겠지만, 결과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를 만나고 7주나 8주 뒤에 수술합니다.” 의사는 여기까지 말한 뒤에 브로셔를 한 장 건네 주었다. 예전에는 유방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지만 최근에는 암이 있는 부분만 절제한 뒤에 방사선 치료를 한다고 했다. 브로셔에는 유방 부분 절제술과 유방 전 절제술의 수술 절차, 수술 후 합병증, 이차 수술 여부, 방사선 치료와 부작용, 수술 부위 주변에 재발할 확률, 미용적 결과와 유방 재건술 유무에 대해 적혀 있었다. “잘 읽어보시고, 어떤 방식으로 수술할지 결정하시면 됩니다.” 아니, 이걸 나에게 정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나는 암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데, 의사인 당신이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머릿속에서 느낌표와 물음표가 빗발쳤지만 정작 나온 건 말줄임표였다. “교수님, 저는 전문가가 아닌데, 어떤 수술이 더 좋을지 어떻게 알 수가…” 의사는 유방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한 뒤에 피드백을 주겠다고 했다.
“유방암은 표준 치료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을 가도 치료 과정은 동일합니다. 이 병원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수술하셔도 됩니다.” 오는 사람은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은 붙잡지 않는다는 건가? 의사가 초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 말이 전혀 덕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진료는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얼떨떨한 채로 진료실을 나왔다.
간호사가 진료 후 안내문을 건네주었다. 진료비를 수납하고 다음 진료를 예약했지만 그 진료를 위해 받아야 할 검사들은 예약할 수 없다고 했다. 빈 자리가 나면 연락을 주겠다는 답만 들었다. 안내문에는 병리과에 5시 전까지 조직 검사 샘플을 접수하라고 적혀 있었다. 채 5분도 남지 않았으니 뛰어야겠네. 여기는 대학 병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