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교회 오빠를 만들고픈 엄마의 욕망
내 집 중2님은 엄마 뜻에 따라 피아노를 3년, 트롬본을 2년 배웠다. 그에게 시간과 돈을 들여 음악을 가르친 저의의 전부가 엄마의 미련과 허영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긴 인생을 살면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음악이라는 친구를 벗 삼아 힘과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도 있었다. ‘살다 보면 괜시리 외로운 날, 힘든 일이 너무 많다(권진원, <살다 보면>)’. 그럴 때 사람에게 힘과 위로를 얻기를 기대했다가 외려 뒤통수치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때는 말을 못 하는 꽃과 나무를 가까이하고 음악을 듣는 것이 안전하고 지혜로운 방법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중2님이 주체, 자발적으로 악기를 배우겠다는 말을 꺼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반 아이들 중에 방과 후 기타 수업을 받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기타도 배우고 싶었나 보다. 그즈음 그의 외할머님은 피아노 ‘도’ 건반에서 다음 음계 ‘미’ 건반까지 닿고도 남는 거미손을 활용해 기타를 배우시다가 공사다망하여 잠시 연습을 중단하신 찰나였다. 외할머님의 기타를 받아와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한 뒤로 나는 그의 음악 수업에 대한 신경을 껐다. 끄는 것이 속 편했다. 그는 집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피아노와 트롬본을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5년 동안 두 악기를 배우는 데 쏟아부었던 돈과 시간, 에너지는 그냥 날아간 걸까?
방과후 수업에서 기타의 기본기를 익힌 그는 곧바로 ‘유튜브 음악대학’에 입학했다. 자기 취향에 맞는 곡을 골라 연주 영상을 반복 시청하며 연습을 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니, 중2님은 교회 청소년부 찬양팀의 베이시스트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배우지도 않은 베이스 기타를 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냥 되더란다. 그냥! 그냥이 어디 있냐. 피아노 치면서 악보 볼 줄 알게 되었고, 트롬본 불면서 화음 익혔고, 기타 치면서 코드를 마스터해서 된 거지.
중2님이 교회에서 기타를 치게 되자, 잠자던 내 욕망은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저렇게 해사한 얼굴로, 반듯하고 깔끔하게,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가 되면 좋겠다 싶었다. 지난가을, 이기호 작가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읽었다. 작가는 소설에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의 허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말을 뒤집으면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다는 말과 통한다. 소설 속의 강민호가 그런 사람이다.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자기식으로 이해하고,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궁금해하지 않기에 결국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가 아는 강민호, 몇몇 교회 오빠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슬프게도, 그 강민호는 내 안에도 있었다.
책을 덮으며 중2님은 그의 개성과 분량에 맞게 친절하면 족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그가 맺어갈 사랑의 관계들 - 친구들 사이의 우정, 연인과 나눌 애정, 누구와 나눌지 모를 인류애는 그의 손에서 펼쳐질 것이니, 내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 단지, 내가 아닌 남의 마음, 내 마음이 아니기에 죽었다 깨도 잘 알 수 없는 남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소설을 읽어야 할 텐데, 기말고사가 눈앞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