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님은 기타 치는 교회 오빠다. 교회 청소년부 찬양팀에서 베이스 기타를 친다. 그가 지금보다 훨씬 작고 말랑말랑했던 때, 그의 음감을 알아본 분이 있었다. 그의 외할머니, 내 엄마셨다. 엄마는 어린 시절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피아노를 칠 줄 아셨다. 크고 긴 손가락으로 와이만의 <은파>를 악보 없이 연주하시던 장면은 내 기억 속에서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손자를 주의 깊게 관찰하셨고 아이가 집중력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 오른손으로 간단한 멜로디를 짧게 연주해 아이에게 들려준 뒤 그 소리를 듣고 따라치도록, 그렇게 피아노 소리를 익히도록 하셨다.
피아노와 친해진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익혔다. 1년 반 동안 주 5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에 가듯 결석 없이 꾸준히 집 앞 학원에 다녔다.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가족 모두 중국에 건너가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다닐 학원이 마땅치 않아 개인 교습을 받았다. 만 3년 동안 아이가 묵묵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 이런 추세로 나가면 내 집 거실에서 바흐 인벤션과 쇼팽 에튀드를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 기대에는 체르니 30번을 마치고 40번에 들어갈 즈음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을 계속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한 나의 아쉬움도 섞여 있었다. 웬걸, 내가 피아노를 그만둔 바로 그 지점에서 아이는 작지만 분명하게 소리를 냈다. 재미가 없어서 더는 피아노 치기 싫다고 했다. 지금 그만두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싶었지만 싫다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즈음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관악기 테스트를 했다. 아이는 자신에게 맞는 악기로 트롬본을 추천받았다고 했다. 한풀 꺾였던 나의 허영심은 곧 부풀어 올랐다. 특이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소년으로 거듭나 주니어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면 폼이 나겠군! 귀국 후 지인의 소개를 받아 트롬본을 전공하는 음대생을 선생님으로 모셨다. 세운상가에서 연습용 악기를 구입해 일주일에 한 번 개인지도를 받기로 했다. 건반악기보다는 관악기가 쉬우니, 부지런히 연습만 한다면 독특한 ‘가오’를 뽐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레슨 첫날, 선생님은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아예 소리를 내지 못하는 학생도 부지기수인데 이렇게 소리를 잘 내는 경우는 드물다며 트롬본 천재의 강림을 예언하셨다. 나도 이렇게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할 날이 오는구나, 우아하게 ‘아이가 어려서 음감이 좀 뛰어난 편이었어요.’ 하고 말하려는 순간,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선생님, 저희 형편에 전공할 건 아니라서요.” 처음에는 기본 음계를 익히느라 부지런히 연습을 했다. 선생님은 매주 오셨다. 관악기를 쉽다고 말한 이는 누군가. 한여름 레슨을 하고 나면 바닥에는 침이, 온몸에는 땀이 범벅이었다. 결정적으로 레슨비가 부담되었다. 결국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저희 형편에 전공할 건 아니라서요, 열흘에 한 번만 오시면 안 될까요?”
만 2년 트롬본을 배우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아이는 전에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재미가 없어서 더는 트롬본 불기 싫다고 했다. 지금 그만두면 수학 학원비는 벌겠다 싶었다. 그것이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