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만두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어지간해서는 식당에 밥 먹으러 가서 만둣국을 주문하지 않는다. 남이 해 준 음식은 다 맛있게 먹는 편이지만, 만둣국만은 예외다. 만둣국 맛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는 터라,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만둣국을 먹었을 때는 기분이 영 별로다. 나는 만두 가겟집 딸이니까.


엄마의 친가와 외가는 황해도지만 엄마 가게에서 빚는 만두는 개성식이었다. 맑은 소고기 양지 육수에 조랭이떡과 만두를 넣은 국은 엄마 식당의 정갈한 한정식 코스를 마무리하는 음식이었다. 만두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크기로, 한입에 쏙 들어갈 수 있도록 동그랗게 빚었다. 밀가루 반죽에 채소 물을 들여 연두색과 주황색으로 만들기도 했다. 얄포름하면서 쫄깃한 만두피의 식감은 손님들의 기억에 남았고, 내게도 영향을 미쳐 만두의 기준점을 만들었다. 시판 만두피를 사다가 만두를 빚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만두는 속도 중요하지만, 결국 '피' 맛이니까.


엄마는 식당을 예약제로 운영했고 연말에는 단체 예약 손님이 많았다. 짬이 날 때마다 만두를 빚어 냉동실에 얼려놓아야 했다. 20대 초반, 친구들과 한창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때 만두 빚으러 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 성질이 났다. 짜증은 엄청나게 났지만 결국 식식대면서 엄마 식당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었으니. 다행스럽게도 내가 빚은 만두는 상품성이 떨어져, 나 대신 여동생이 자주 엄마의 호출을 받았다.


중국 천진에서 잠시 살았을 때,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만두를 빚었다. 만두 속을 왕창 만들고 밀가루도 반죽해 숙성시켜 놓은 뒤, 당시 집 청소를 도와주시던 이 여사님께 같이 만두를 빚자고 말씀드렸다. 대리석 식탁 위에 만두소가 그득하게 담긴 양푼을 올려놓고 나와 이 여사님, 두 지인이 둘러앉았다. 만두 가겟집 딸인 내가 만두피를 밀겠다고 밀대를 잡았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여사님께서는 만두의 고향, 대륙 출신답게 한 번에 만두피 두 장을 미는 신공을 보여주셨다. 나와 지인들은 이 여사님의 만두피 제작 속도를 따라잡느라 수다떨 새도 없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했다. 준비한 소에 비해 반죽이 부족해 이제 좀 쉬겠구나 싶었는데, 이 여사님께서 후다닥 밀가루를 다시 반죽하시는 게 아닌가. 결국 나와 지인들은 냉동실 한가득 만두를 쟁이고, 발맛사지샵에 몰려가 피로를 풀었다.


중국에서 나는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파트 후문과 연결된 상가의 만둣가게에 자주 가곤 했다.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걸어가면서 다른 한 손으로 봉지에 담긴 빠오즈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그렇게 십여 분을 걸어 맥도널드에 도착해 '메이슬카페이(美式咖啡 [měishìkāfēi])'를 입가심으로 한 잔 마시면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중국 돈으로 10원(한국 돈 1700원 정도)만 내면 금세 따끈하게 쪄내 주던 아홉 개의 빠오즈는 육아에 지친 내가 또 하루를 살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었다.


얼마 전, 지인과 내수동 대우프라자빌딩 지하에 있는 <평안도만두집>에 들렀다. 커다랗고 긴 평안도식 만두라 한입에 먹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국물은 상당히 담백했다. 가격도 부암동 <자하손만두>나 인사동 <개성만두 궁>에 비해 적당했다. 그날 입맛에 딱 맞는 만둣국을 먹어서 그런지, 며칠 전부터 만두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밥 짓기에 입문한 중2 아들에 주말이면 한두 끼 정도는 책임질 수 있게 된 남편이 있으니, 주말에 한번 빚어 볼까?


사진 : 신정에 먹은 친정 만둣국. 조랭이떡 대신 가래떡이 들어갔다. 돈 안 받는 음식은 대충 차리시는, 내 엄마는 진정한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