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추어탕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지난 설에 시부모님댁에서 여섯 끼를 차리고 먹고 치우고 왔다. 딱 그것뿐이었다. 나물과 반찬은 이미 어머님께서 다 해 놓으셔서 나와 남편은 명절 전날 고구마, 새우, 쥐포, 오징어 튀김만 했다. 그런데도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몇 년 전에 비하면 힘들 것이 없는 명절 순례였다. 기차에서 기저귀 갈고 우유 먹이며 칭얼대는 아이 어르던 것, 각종 음식을 끝도 없이 해서 몸에 밴 기름 냄새를 지우려고 하루에 두 번씩 샤워하던 것, 사흘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해 쌓인 피로와 짜증으로 분노 조절이 안 되어 남편 머리끝도 보기 싫은 것은 이제 모두 지난 일들이 되었다.


시부모님댁 현관문으로 들어가 여섯 끼를 먹고 다시 나올 때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반드시 여섯 끼를 먹고 나와야 한다는 ‘부담’이다. 오랜만에 두 분 부모님을 뵈면 반갑다. 아주버님, 형님, 아가씨, 고모부, 조카들 안부도 궁금하다. 그러나 그 반가움과 궁금함이 ‘부담’을 가볍게 만들지는 못한다. 여섯 끼를 먹는 동안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자유를 반납하고 실내 공간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누른다. 시부모님이 가까이 사시면 자주 들러 한 끼 식사를 같이하고 헤어질 수 있는데, 서울에서 400km가 넘는 곳에 사시니 그럴 수가 없다. 시간과 돈을 들여 뵈러 갔으니 이틀은 보내고 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남편과 아이들과 나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 마음을 헤아린다.


은혜롭게도, 어머님이 끓여놓으신 추어탕이 들통에 한가득 들어있었다. 이제 되었다. 추어탕을 먹으면 된다. 어머님의 추어탕은 ‘부담’을 ‘기쁨’으로 바꾸는 변환 스위치다. 실제로, 설날 아침에는 탕국을, 점심에는 떡국을 먹었는데 이 두 번을 제외한 네 번의 식사를 할 때 나는 추어탕을 한 대접씩 들이켰다. 어머님과 아버님이 집에서 한 시간 거리 떨어진 텃밭에서 직접 키우신 시금치와 도라지나물도 맛있지만, 추어탕에는 댈 것이 못 된다. 추어탕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시장에서 사 온 팔팔한 미꾸라지에 소금을 넣어 죽인다(고기나 생선을 요리할 때, 내가 직접 소나 돼지, 닭이나 물고기를 죽일 필요는 없다. 제삼자가 대신해주니까. 그러나 추어탕은 요리하는 사람이 직접 이 과정을 담당해야 한다). 억지로 죽이는데 곱게 죽을 생물이 있을까? 소금 세례를 받은 미꾸라지는 난리를 친다(나는 이 단계를 감당할 자신이 없으므로 어머님께 추어탕 끓이는 법을 배울 생각이 없다). 최후의 한 마리까지 사망 선고를 받고 나면 죽은 미꾸라지를 (우리 어머님 표현으로는) ‘빨아야’ 한다. 미꾸라지는 빨래가 아니지만 그렇게 빨고 또 빨아야 한다. 손빨래를 마친 미꾸라지를 삶은 뒤 체에 내린다. 모두 열 손가락을 쉴 틈 없이 놀리는 작업이다. 여기까지가 추어탕 끓이기의 전반부다. 후반부는 추어탕에 들어갈 채소를 씻고 손질해 된장을 풀어 끓이는 것이다. 어머님의 추어탕에는 시래기, 토란대, 숙주 등과 함께 방아잎이 들어간다. 산초가루와 함께 경남 특유의 추어탕 맛을 내는 방아잎의 향은, 18년 전 새댁이었던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땡초’라 불리는 청양고추 몇 조각이 잡아주는 맛의 균형은, 요리 좀 한다고 하는 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다.


내 어머님은 출생신고를 뒤늦게 한 46년생으로 육 남매의 장녀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집안의 장녀가 대부분 그랬듯 공부는 일찍 접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셨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쓸만해 보이는 남자였던 아버님과 결혼한 뒤에도 고단하게 사셨다. 공장 근로자였던 아버님은 자식 셋을 공부시키려고 보일러 기술을 활용해 목욕탕을 차리셨다. 아버님이 공장에 출근하시면 어머님은 카운터를 지키느라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셨다. 목욕탕 카운터에 감금된 한스러운 세월을 어머님은 여행으로 푸셨다. 자식 셋을 출가시키고 목욕탕 정리하신 뒤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셨고 오대양 육대주 꽤 많은 곳을 가 보셔서 여권에 도장 찍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힘든 시절이 남긴 파편일까, 이제 신우신장염과 만성 방광염 때문에 멀리 가는 여행은 엄두를 못 내실 듯하지만, 흰머리가 많아지며 슬슬 철들고 있는 아들 차를 타고 국내 여행은 다닐 수 있을 게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어머님 입에서 ‘힘들다’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번은 문안 전화하면서 여쭈어보았다. 어머님은 안 힘드시냐고. 당신보다 서른 살이나 젊은 저도 이렇게 힘든데 어머님은 어떻게 힘들다는 말씀을 안 하시냐고. “힘들지.” 그런데 그러고는 땡이었다. 자식 부담 주는 말은 꾹 참으시고, 대신 추어탕을 끓여주시는 어머님. 어머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반드시 명절마다 추어탕을 먹을 테다. 그렇게 추어탕의 힘을 내 몸에 차곡차곡 쌓으면, 나도 조금은 어른다운 어른이 되겠지.


사진 : 집에서 끓인 추어탕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식당 추어탕의 최고봉으로 치는 혜화동 벌교영양추어탕의 ‘자연산’추어탕. 이영돈 PD가 검증을 마쳤다. 전라도식 추어탕. 어머님 추어탕이 그리울 때 한 그릇씩 먹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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