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집안일에서 벗어나 왕자님을 만나고 싶어서, 그렇게 해서 신분 상승을 이루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예닐곱 살 무렵의 나는 그저 달빛에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어 하는 여자아이였다. 디즈니 만화 속의 신데렐라가 입었던 크리놀린 드레스는, 치마 속 새장 같은 보형물을 걸쳐야 하는, 실상은 무겁고 불편한 드레스다. 그러나 치마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제삼자들에게는 둥실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느낌에 취해서 ‘공주님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었다.
나는 첫째로 태어났으니 세 살 무렵까지는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야말로 ‘공주’였을 것이다. 상황은 여동생의 탄생으로 역전되었다. 그녀는 엄마를 빼닮았으므로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예쁘다’는 수식어는 온통 그녀에게 바쳐졌다. 대신 나는 ‘공부 잘하는’, ‘똑똑한’ 딸로 불렸다. 그렇게 불리면서 ‘공주님 드레스’에서 점차 멀어졌다. 자기희생으로 부모를 살리는 서사 무가의 주인공 ‘바리데기 공주’나 용에게 잡혀간 왕자를 구하는 페미니즘 영웅 ‘종이봉지 공주’는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멋지지 않은가.
결혼할 당시 허례허식을 끔찍이 싫어했다. 나보다 앞서 미국에서 결혼한 사촌 언니가 500달러에 웨딩드레스를 구입했던 것이 생각나, 그 옷을 재활용해 입기로 했다. 평소 지론에 따른 결정이었으나 사실 돈도 없었다. 돈이 넉넉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예비 신랑에게 아무 말 없이 청담동 웨딩숍에 혼자 들렀던 적이 있다. 결혼식 당일 한번 입는 데만 몇백 만 원이 드는 드레스를 입어 보았다. 딴에는 상당히 고민해서 고른 드레스였는데, 막상 입어보니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신데렐라의 드레스가 빛이 났던 것은 결국 얼굴이 예뻐서였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이 정리되었고 돈은 굳었다. 그렇게 ‘신데렐라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던 내 욕망은 정리된 줄 알았다.
내가 결혼하고 7년 뒤에 여동생이 결혼했다. 여동생은 오랜 승무원 생활로 착실하게 결혼 자금을 모아놓았다. 예쁜 그녀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고 누구보다도 예쁜 신부가 될 줄 알았는데,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 여동생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촌 언니의 그 드레스를 입었다. 넌 뭘 입어도 예쁘지 않으냐, 멀리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나도 말을 보탰다. 문제는 내 옷이었다. 키가 커서 한복이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나는, 여동생 결혼식이지만 정장을 입을 생각이었다. 백화점 여성복 코너를 한 바퀴 돌다가 반짝이는 신데렐라의 드레스 자락을 보았다. 나는 두 번 생각할 여지 없이, 그 옷을 샀다.
내가 산 옷은, 가뜩이나 입고 싶지 않은 드레스 때문에 속상한 여동생 마음에 불을 붙인 불쏘시개가 되었다. 동생은 내 옷을 보더니, 신부가 흰색 드레스를 입는데 언니가 흰색 원피스를 입으면 어떡하냐고, 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나대로 이건 흰색이 아니라 은색이다, 내가 이거 입는다고 누가 애 둘 딸린 나를 신부로 보겠느냐며 맞받아쳤다. 그 순간만큼은, 지난 삼십여 년 동생에게 장난감이든 선물이든 먼저 고르라고 양보했던 언니는 없었다. 결국 나는 여동생 결혼식에 내 고집대로 그 ‘은갈치 드레스’를 입었다. 평소와 달리 고집을 꺾지 않는 나와, 기분이 상한 여동생 사이에서 엄마가 나를 툭 치며 조용히 한마디 하셨다. 검정 재킷 걸쳐라.
당시의 나는 왜 그 옷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나 자신을 살필 거리감을 갖지 못했다. 이런저런 가치 명제에 가려진 내 마음을 보지 못했다. 내 욕망에 좀 더 정직했더라면, 괜스레 동생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도 돋보이고 싶었어,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보이고 싶었어, 너만큼은 아니지만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여동생에게 그날의 일을 정식으로 사과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몇 년 전까지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그 옷을 입었다. 40대 중반이 되었으니, 이제 입을 만큼 입었다. 무릎 위로 한참 올라오는 미니 원피스를 입고 갈 데도 딱히 없다. 신데렐라는 결혼 전에 주부였고, 결혼으로 가사노동에서 은퇴했다. 남편이 더는 출근하지 않게 되면 나도 주부 생활에서 은퇴할 수 있을 테니, 은퇴식에라도 한번 입어야겠다. 마지막으로 반짝이도록.
사진 : 2009년 탤런트 김희애 씨가 냉장고 광고를 할 때 입은 ‘은갈치 드레스’. 브랜드는 CLUB MON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