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전망 좋은 집(1)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동쪽으로 난 베란다의 불투명 유리창 때문에 겨울이면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집. 그런 집에서 만 4년째 살고 있다. 집주인은 밖에서 집 안이 들여다보이는 게 싫어서 일부러 창 유리를 불투명으로 골랐을 것이다. 사생활은 보호받았지만, 밖을 볼 수가 없으니 집은 동굴과도 같다.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거실에 앉아있으면 동굴 무덤, 카타콤에 살던 초대교회 기독교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중국에서 30개월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어디에 살지 고민했다. 도서관과 교회가 멀지 않은 곳, 특히 아이들이 걸어서 교회에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었다. 내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교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나도 교회 가까이 살면서 교회 지인들과 밥 먹고 차 마시고 수다 떠는 일상을 누리고 싶어서였다. 기독교인이 ‘개독교인’이 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도 교회 다니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사랑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 믿음은 동일하다.


인터넷 부동산사이트를 들여다보다가 이 집을 발견했다. 400여 세대 아파트 단지에서 딱 하나 나온 전셋집이었다. 아이 셋 키우는 처지이니 1층에 살면 나와 남 모두 층간소음 분쟁 없이 편히 살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 이 집에서 아이들은 원도 한도 없이 뛰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뛸 나이가 지나니 감사한 마음은 간사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는 빛이 고팠다. 동굴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세 계약 만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올겨울, 매서운 칼바람은 불어오지 않은 대신, 전국적으로 역전세난의 바람이 불어왔다. 아파트값이 크게 오르고 내리지 않는 서울 강북의 내 동네도 그 바람에 이사하기가 어려워졌다.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집을 정리하고, 집을 보러 오겠다는 연락에 맞추어 일상생활을 조정했지만 들어올 세입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1층에 들어오기는 쉬웠으나 나가기는 어려웠다. 아이를 키우거나 어르신을 모시는 상황이 아니면 찾는 이가 드물었다. 1층은 시세보다 저렴한데, 돈을 더 주고서라도 사람들이 높은 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빛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리라. 내 마음이나 남의 마음이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이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옮겨갈 집 계약을 할 수는 없기에, 임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자율주행 3세 어린이를 동반하고 집을 보러 온 부부를 만났다. 두 번이나 보러 오셨으니 계약을 하실 것이라 믿고, 이제는 내가 옮겨갈 곳을 알아보기로 했다. 옮겨 봤자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좀 더 높은 층으로 옮기는 것이므로 지금 집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먼저 옆 동 8층을 보았는데, 그동안 동굴에서 4년을 살아낸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로, 환했다. 환해서 좋다고 했더니, 부동산 사장님께서, 사실 엊그제 나온 집인데, 전망이 정말 최고라고 하셨다. ‘빛만 들어도 감지덕지합니다. 여기가 해운대 앞도 아닌데 그 전망이 다 그 전망이지요.’하고 속말을 중얼거렸으나 “그럼, 한번 볼까요?” 하고 사장님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19층 집은 내가 사는 1층 집이나 방금 본 8층 집과 반대 방향, 남서향이었다. 거실 창 가득, 하늘, 인왕산, 비원 숲, 성균관 대성전 안뜰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벽에 그림을 걸 필요가 없는 집이었다. 이 전망은 그림의 떡이 될 것인가? 1층 탈출이 급선무였다.


사진 : 성균관 명륜당 뜰. 19층에서 찍으면 '항공샷'으로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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