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양말을 신는 건 회사에서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난 몇 년간 복식을 즐기는 수많은 남성들은 옷을 '조금 더' 잘 입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 왔다. 옷을 입는 행위가 학문이나 학술은 아니지만, 고민과 연구를 통한 진화는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해외의 널리 알려진 인플루언서 착장은 물론, 브랜드의 컬렉션 화보에서 영감을 받는가 하면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구글과 이미지 검색 중심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핀터레스트(Pinterest) 등을 통하여 옛 착장 일러스트를 찾아보면서, 지금 적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러한 영감이 새로운 유행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진화적 행동은 지난 시대에서의 옷 입기에서 기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크다고 본다. 최근 들어 눈에 띄는 흰 양말을 활용하는 코디네이트도 분명 앞서 언급한 범주 안에 놓여있다고 여긴다. 흰 양말을 활용한 코디네이트를 언급하기에 앞서 최근 클래식 씬의 경향에 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대가 변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경직됐던 조직문화가 유연하게 바뀌고, 이에 맞춰 드레스 코드도 완화되고 있다. 정장을 요구하던 수많은 기업들이 드레스 코드를 비즈니스 캐주얼로 바꾸는가 하면, 자율복장을 전면 도입한 곳도 있다. 물론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회사에서도 마음껏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고 있으며, 유연근무제 도입과 맞물려 이 같은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복장에 대한 규정에 사회 전반적으로 완화되면서 옷 입기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스타일도 다양하게 파생되고 있다. 기존에는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수트와 옥스포드 구두 혹은 자켓과 바지 색상을 달리하는 세퍼레이트 차림을 주로 입었다면, 지금은 스포츠코트와 데님 또는 치노를 입고, 로퍼 또는 운동화를 신는 코디네이트의 선호도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타이를 두르는 비중도 크게 줄었다. 적잖게 '힘을 뺀' 옷차림이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도 뉘앙스와 무드도 조금씩 바뀌면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기존에는 야콥 코헨(JACOB COHEN)과 트라마로사(TRAMAROSSA)로 대표되는 테일러드 진과 플릿츠가 들어간 치노 트라우저를 주로 입었다면, 최근의 경향은 LVC(Levis Vintage Clothing)와 RRL과 같은 아메리칸 캐주얼을 대표하는 브랜드와 오어슬로우(Orslow), 레졸루트(Resolute), 웨어하우스(WAREHOUSE) 등 일본 워크웨어 브랜드의 데님과 치노를 두루 섞어 입는 식이다. 테일러드 진을 입었을 때보다 조금 더 힘을 뺀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테일러링 자켓에 워크웨어로 집약할 수 있는 데님을 입음으로써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 무드를 연출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오롯이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룩을 연출했을 때 부담 없이 신을 수 있는 슈즈로는 로퍼가 주로 활용되고는 하는데, 기존에는 로퍼와 색을 맞춘 검정과 감색, 갈색 양말을 주로 신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흰 양말을 섞은 착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테일러링 자켓, 아메리칸 캐주얼을 대표하는 워크웨어, 프렌치 아이비가 뒤섞인 새로운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법도 한 이 옷차림에서, 기존에 봐 왔던 코디네이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무드가 잘 느껴진다. 좀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은 아닌데, 멋스럽고 자꾸 하단에 시선이 간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범인은 바로 하얀 양말이다. 때때로 흰 양말을 신은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해외 포럼을 들여다보면, 청소년기 시절 흰 양말을 신었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실 축구나 농구, 야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서 흰 양말은 당연하게 신는 아이템으로 여겨진다. 이에 반해 일상생활에서 흰 양말을 신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다. 하지만 흰 양말을 신는 행위가 단순히 '이상한 사람의 일탈'로 여겨지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존재한다. 일상 옷차림에서 흰 양말을 신는 것 또한 근본이 있고 전통과 역사가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핀터레스트를 통해 1960년대의 아이비 룩(Ivy look) 사진을 찾아보면, 로퍼와 함께 착용한 하얀 양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흰 양말과 로퍼를 매치하고 있다. 데님, 치노, 쇼츠 할 것 없이 바지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양말의 색상은 하나로 통일되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정립된 스타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하얀 양말은 다시 사람들의 손에서 점차 멀어져만 갔다. 심지어 그걸 신는 행위 자체가 '패션 테러리스트'로 여겨지기도 했다. 마치 하나의 금기가 되어버린 흰 양말.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흰 양말은 조금씩 재조명받기 시작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양말을 신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우리에 비해 옷을 입는 행위에 대해 자유분방한 시각을 가진 해외에서도 여러 말들이 많은 걸 보면, 국내에서도 좋은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옷을 입는 행위는 누군가의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옷 입기 목적은 궁극적으로 '자기만족'이며, 행위는 본인이 지향하는 개성과 무드를 표출하는 것이다. 옷 입기가 평가를 받기 위한 건 아니지만, 행위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때때로 평가가 이뤄지고는 한다. 그것도 수많은 곳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안에서, 누군가의 입과 귀를 통해서,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를 통해서. 나의 옷 입기를 누군가가 평가하는 것이 적잖이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를 막을 수 없는 이상,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더할 나위가 없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자기만족'이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문제는 이렇게 이뤄지는 '평가질' 속에서 한 사람이 추구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이나 개체와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이 무참히 짓밟힐 수 있다는 데 있다. 때로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모욕적 언사를 들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의문이 든다. 단순히 하얀 양말을 신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 심하게 꾸짖음을 당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하얀 양말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라도 준 걸까. 심지어 하얀 양말을 신고 회사에 가거나, 경조사에 참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 역시 흰 양말 신기에 흥미를 느껴, 조금씩 즐기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 한 가지 규칙만 존재한다. 반드시 주말에만 신을 것. 흰 양말을 신는 것과 관련하여 해외 포럼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검정이나 감색, 갈색 양말에 비해 흰 양말이 코디네이트에 위트를 더해주고, 캐주얼한 무드를 더 강하게 연출할 수 있다는 것. 나 역시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내가 흰 양말을 신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말은 자칫 심심해 보일 수 있는 코디네이트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이다. 가령 로퍼에 보라색 양말을 신는다든가, 녹색 양말을 신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흰 양말도 다를 바 없다.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양말 하나만으로도 무드를 달리하고, 힘을 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재밌고 즐거운 일인가. 내가 흰 양말을 싫어한다고 해서, 흰 양말 신은 다른 사람을 혐오할 필요는 없다. 공감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단지 취향이 다를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경조사나 중요한 자리에 흰 양말을 신는 건 틀린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주말 캐주얼 착장에서 흰 양말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선, 조금은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옷 입기에 정답은 없다. 취향의 차이를 존중하자. 그래야 패션도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흰 양말을 비롯하여 색상이 있는 양말을 좋아한다면, 신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검정 양말을 신는 건 회사에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