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쓰는 비스포크 하우스 열전 - ①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 인 서울
사르토리아 준(Sartoria Jun·이하 살토준)으로 널리 알려진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 인 서울(Sartoria Napoletana in Seoul).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 인 서울을 이끄는 전병하 테일러는 해외 유학파 1세대로, 이태리 나폴리의 거장 안토니오 파스카리엘로(Antonio Pascariello)를 사사한 사르토이다. 6년가량 AP의 가르침을 받은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2013년 4월 무렵 삼각지에 공방을 열었다. 그리고 7년이 흐른 지금, 그는 국내 비스포크 하우스의 정점에 서 있다. 나폴리 유학을 다녀온 한 청년이, 대한민국 비스포크계를 이렇게까지 뒤흔들어 놓을지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가 전개하는 라인을 설명하면, 원맨 비스포크인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 인 서울과 RTW(Ready-To-Wear)인 사르토리아 준으로 각각 나뉜다. 대부분 사르토리아 준 또는 '살토준'으로 통칭하여 불린다. 또는 알아듣기 쉽게 '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준'이라는 한 글자만 들어도, 설렘이 그득할 것이다. 클래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전병하 사르토는 그런 존재다.
살토준 옷의 가장 큰 특징은 어깨의 형태와 남성다운 실루엣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만드는 옷을 보면, 견봉점에 좀 더 여유를 두는 걸 느낄 수 있다. 옷을 입었을 때 움직임이 가장 많이 생기는 곳이며, 옷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심미안적으로 보이는 부분 못지않게 착용감을 우선으로 두는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그래서 기성 라인 옷을 실제 입었을 때도 어깨 부분의 편안함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라고 여겨졌다. 고지와 버튼 밸런스가 상대적으로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주머니 또한 그렇다. 전체적인 무게의 중심을 아래에 두고 있는데, 옷에서 풍겨지는 무드가 여느 나폴리 옷 답지 않게 진중함이 깊게 배어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과하지 않게 열린 프런트 컷이나, 화려하지 않아도 볼륨감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라펠의 모양에서도 잘 느낄 수 있다. 반복적으로 착용하면서 형성되는 에이징 과정에서 라펠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 또한 살토준 옷의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만들고 있는 옷 가운데 최고의 디자인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래글런 코트와 더블 브레스티드 자켓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르토의 지향점과 취향이 오롯이 반영된 결과물로 생각되는데, 이 같은 느낌은 오직 살토준의 옷에서만 볼 수 있다. 더블 자켓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라펠의 솟구침과 하동까지 떨어지는 라펠의 볼륨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래글런코트에서는 어깨 모양과 라펠 각도는 물론, 하우스 특유의 여유로운 실루엣이 두 눈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옷들은 분명 살토준의 하우스에서만 도출될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확신한다.
전병하 사르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르토가 있다. 치치오(Cicio)의 수장 노리유키 우에키(Noriyuki Ueki)이다. 그 역시 AP에서 수학했으며, 둘은 매우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스승에게 사사했어도, 둘의 옷은 분명 다르다. 살토준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남자다운 느낌이 강하다면, 치치오는 섬세하고 정교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나폴리 스타일을 두고도, 바느질의 텐션과 마감에서, 고지의 높낮이에서, 혹은 라펠의 각도에서, 주머니의 모양에서, 기장의 길고 짧음에서, 선호하는 원단의 종류에서, 소매 단추의 개수에서 등 하나하나를 사트로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지향점과 결과물이 달라진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옷을 입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고, 이를 염두에 두며 애착을 갖고, 옷을 갖춰 입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살토준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고객의 취향이나 성향이 반영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사르토가 추구하는 하우스 스타일을 잃지 않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사르토마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나는 사르토의 지향점을 유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 고객의 요청사항을 모두 받아들이게 될 경우, 기존에 정립되었던 하우스 스타일이 자연스레 옅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요소는 자칫 하우스 스타일을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도 충분히 존재한다. 비스포크라는 작업과 결과물이 사르토와 고객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나오는 것이라 해도, 결국 옷을 만드는 존재는 사르토다. 본인이 납득이 가지 않는 옷을 만드는데, 옷이 잘 만들어질 리가 만무하다. 나폴리 옷을 만드는 하우스에 가서 피렌체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시각에서 비춰 볼 때 자신의 취향과 합치하는 하우스에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살토준은 서두에 언급했듯이 비스포크 라인과 RTW 라인을 각각 나뉘어 전개하고 있는 것은 물론, 협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하우스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기성 셔츠 라인인 일 카미챠오(Il Carmiciaio) 셔츠는 비스포크 셔츠 못지않은 높은 완성도와 뛰어난 착용감을 자랑한다. 일 카미챠오 셔츠에는 사르토의 지향점이 그대로 담겨있다. 필자는 여러 벌의 일 카미챠오 셔츠를 소장하고 있는데, 아직 그가 만든 셔츠만큼 큰 만족도를 준 셔츠는 없다고 확신한다. 그런가 하면 니트, 티셔츠, 유틸리티 자켓 등 다양한 기성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같은 기성 제품 출시는 살토준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분명 희소식일 것이다. 특히 앞으로도 다양한 기성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다양한 선택지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살토준의 행보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