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통해 선보이는 '곡선'의 미학

재미로 쓰는 비스포크 하우스 열전 - ② 사르토리아 살라비앙카

by 푸른끝
sartoria-sala-bianca-1536x1020.jpeg 최호준 사르토

시대 변화와 상관없이 아름다운 옷,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옷’을 만드는 일. 그래서 사르토는 위대하다. 피렌체 컷은 무얼 뜻하며, 어떠한 매력을 지니고 있을까.


이 같은 물음에 피렌체 사람들은 말한다. “리베라노 & 리베라노(LIVERANO & LIVERANO)의 옷을 입어 보면 알게 된다”고. 리베라노 앤 리베라노의 수장 안토니오 리베라노가 만드는 옷은 하나의 바이블이자 현존하는 예술작품처럼 여겨진다. 그런 안토니오 리베라노를 사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서 묵묵히 올곧은 길을 걷고 있는 한국인 사르토가 있다. 사르토리아 살라비앙카(Sartoria Salabianca)의 최호준 사르토이다. 그는 전통적인 피렌체 스타일을 계승하는 사르토로, 리베라노 & 리베라노에서 7년가량 수학했으며, 사르토리아 프란체스코 구이다(Sartoria Francesco Guida)에서도 경험을 쌓는 등 줄곧 피렌체 옷을 만드는 여정을 걸어왔으며, 수미주라(Su Misura) 기술을 배운 피렌체에서 지금도 여전히 옷을 만들고 있다.


살라비앙카는 포르테자 다 바소(Fortezza da Basso) 내 연회장인 '하얀 방'을 뜻하는데, 포르테자 다 바소에서 처음으로 패션쇼가 열린 곳이다. 이태리 복식 역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장소인 데다, 그가 테일러링을 배운 피렌체와도 연관이 깊어 살라비앙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가 만든 옷을 유심히 보면, 우아한 그 공간과도 많이도 닮아있다. 최호준 사르토가 지향하는 옷의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만드는 옷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곡선'이다. 라펠부터 프런트 라인까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유려한 실루엣은 정교하면서 세련된 곡선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곡선은 옷의 핵심인 볼륨감과도 맞닿아 있다. 평면이고 직선이던 옷감에 섬세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담아낼 수 있는 원천은 정교한 다림질에 있다. '마에스트로' 안토니오 리베라노가 나온 영상을 찾아보면, 그는 늘 자신의 옷을 설명할 때 다림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한다. 바느질을 통해 만들어내는 볼륨감 못지않게 다리미 열을 이용한 열변형, 즉 원단이 늘어나는 성질을 이용하여 우아한 곡선을 만드는 것이다.


최호준 사르토 역시 자신의 옷을 만들 때 다림질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살라비앙카가 풍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이유이다. 피살라비앙카의 옷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방되어 있는 프런트 컷과 통판 패턴, 패드를 넣지 않고 심지만을 사용한 구조, 살짝 여유 있는 어깨, 오픈심 형태의 깨끗하고 둥근 라인, 낮은 고지라인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요소가 하나로 집약되어 부드럽고 볼륨감이 넘치며, 세련된 옷을 만들기 위한 단초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피렌체 컷 특유의 통판 패턴에 있다. 통판 패턴은 절개형 패턴과 다르게 프런트 연장 다트가 없으며, 주머니까지 뻗어나가는 사선 형태의 다트 하나만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프런트 다트를 잡지 않기 때문에 자켓을 착용했을 때, 타인의 시점에서 시원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통판으로 인해 중동에 여유가 생기거나 하동이 뜰 수 있는 부분은 리베라노 & 리베라노가 그랬던 것처럼 회전을 통해 해결한다. 연장 다트를 쓰지 않고도, 옷의 회전을 통하여 안착시키는 셈이다.

1503916615355883-_MGL0165.jpeg '하얀 방' 살라비앙카

최근에 평소 자주 찾는 편집숍이자 유로텍스 원단 에이전시인 마떼리아(Materia)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실장님의 배려로 살라비앙카의 옷을 입어볼 기회가 있었다. 실장님이 갖고 계신 살라비앙카 자켓은 최호준 사르토가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거의 처음으로 만든 옷이라서 현재 정립되어 있는 패턴과는 살짝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약간의 패턴 차이는 있지만, 풍성한 볼륨감을 비롯하여 열려 있는 프런트 라인, 낮은 고지 라인, 여유 있는 어깨, 깨끗한 어깨 모양, 통판 패턴, 제티드 포켓 등 전체적인 지향점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추동 원단으로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오롯이 느껴졌고, 지금까지 입어보았던 옷 가운데 가장 편안했다. 어깨 부분이 안착되는 느낌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으며, 통판임에도 불구하고 상동과 중동의 밸런스가 좋았고, 하동도 뜨지 않았다. 옷을 전체적으로 만져보고,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최호준 사르토 특유의 꼼꼼함이 마감에서도 잘 드러났다. 그간 입던 옷과 분명 달랐다. 그래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피렌체컷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하자면, 현재 전통적인 피렌체 스타일을 계승하는 사르토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피렌체 컷을 토대로 한 수미주라는 물론, RTW(Ready To Wear)도 접하기 쉽지 않다. 피렌체 옷을 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피렌체컷의 명맥을 이어가는 리베라노 & 리베라노는 옷의 역사 그 자체이다. 이와 함께 리베라노 DNA를 바탕으로 피렌체컷을 계승하는 살라비앙카의 최호준 사르토를 비롯하여 사르토리아 코르코스(Sartoria Corcos)의 코타로 미야히라(Kotaro Miyahira), 체말 셀리미(Qemal Selimi), 앞선 세 명의 사르토와 결은 다르지만 궤를 같이 하는 사르토리아 카부토(Sartoria Cavuto)를 이끄는 유스케 카부토(Yusuke Cavuto)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들이 있음에, 피렌체컷으로 만들어진 옷은 늘 존재할 것이다.


살라비앙카는 최호준 사르토가 4개월마다 국내에 들어와 트렁크쇼를 여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조선호텔에서 2일 정도 개인 오더를 진행하며, 이후 유니페어에서 트렁크쇼를 전개하고 있다. 진행 과정은 상담(주문)을 시작으로 1차 가봉, 2차 가봉, 납품 순으로 이뤄지며,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다음 주문부터는 8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짧지 않은 여정이지만, 옷을 통해 느껴지는 살라비앙카 특유의 우아함과 부드러움 등은 분명 경험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르토의 국내 트렁크쇼 전개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해외로 가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 해외 사르토의 옷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최호준 사르토는 지난 6월 자가격리를 하면서도 국내에서 트렁크쇼를 진행한 바 있다. 또한, 오는 10월에도 트렁크쇼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 정말 소중한 기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살라비앙카를 경험해볼 생각이다. 살라비앙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피렌체 옷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중함·여유…나폴리 옷의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