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깨달은 몇 가지
기성복을 주로 입던 사람이 비스포크로 지어진 옷을 입었을 때 실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비스포크 하우스를 찾아 채촌을 하고 여러 차례 가봉을 보는 과정에서, 기성복을 입으며 생겼던 아쉬움이 모두 완벽하게 해소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는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찐빠가 나면 어쩌지'라는 우려와 걱정도 마음 한켠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풍선처럼 크게 부풀면서 커질 대로 커져버린 기대감은, 제작된 옷을 입는 과정에서 금세 실망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원천적으로 옷을 입는 사람과 그 옷을 만드는 하우스의 기대치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컨대 체사레 아톨리니와 키톤, 브리오니를 입는 사람이 첫 비스포크를 하게 된다면, 만족도를 느끼기 위하여 요구되는 기준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가 비스포크 하우스에서는 제작비용에 비례하여 원단 선택이 이뤄지며, 그에 따른 공임(작업자 수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해당 하우스에서 최대치로 결과물을 만들어 냈어도, 좋은 기성 옷을 입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간극을 줄이는 것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좋은 옷을 입던 사람은 만족을 위한 기준 상한선이 높으므로, 원맨 메이드 또는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사트로가 있는 하우스를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제아무리 옷을 잘 만드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하우스라 하더라도, 공정에서 실수가 발생하거나 하우스의 지향점과 고객의 취향에서 상충하는 지점이 발생하게 되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나는 비스포크에 대한 기대 심리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비스포크로 옷을 지어 입을 때,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충족될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은 덜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제아무리 잘 만들어진 기성 옷이든, 맞춤 옷이든 세상에 완벽한 옷은 없다. 조금 더 손이 가는 옷만이 존재할 뿐이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점은 '경험'과 '센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센스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라면, 경험은 흔히 표현하는 '수업료'를 지불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축적되는 자산이다. 센스가 없어도, 적잖은 수업료를 내가면서 배양한 경험은 스스로에게 일종의 아카이브가 되어 어떠한 선택에 있어서도 실패 확률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비스포크든, 기성이든 마찬가지다. 센스가 없는 나의 경우엔,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적잖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간 많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잃은 것도 있지만, 반대로 배운 것도 많다. 그렇게 깨달은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비스포크는 완벽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스포크에 대한 기대 심리를 어느 정도는 줄여야 옷에 대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 흔히 맞춤 옷이라고 하면 개인의 패턴을 뜨고, 재단하여 제작하기 때문에 기성에서 느끼던 한계를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스포크를 통해 지어진 옷은 분명 어깨가 잘 놓이고, 몸에 잘 안착되며, 체형을 보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평면이던 옷감을 패턴을 토대로 재단하여, 심지 등의 부자재를 결합한 후 봉제하여 옷의 형태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몸에 맞게 입체감을 불어넣고, 하우스 특유의 실루엣을 가감 없이 녹여낸다.
나는 이러한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상충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여긴다.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비스포크 옷이라 하면 하우스컷을 토대로 도출하는 실루엣과 고객의 체형을 완벽하게 보정하는 옷을 것이다. 하우스 실루엣을 강조하려면, 보정이 상대적으로 덜 들어갈 수 있으며, 반대로 보정을 우선시하면 실루엣이 덜 살아날 수 있어서다. 테일러에 따라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는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발생할 수 있으며, 옷을 입는 고객의 입장에서도 무게중심을 어디야 둬야 할지에 대해 제각기 다를 수 있는 만큼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스포크가 매력적인 이유는 앞서 언급한 문제를 상쇄시킬 정도의 매력이 크기 때문이다. 기성에서 볼 수 없는 원단을 내가 직접 골라 옷으로 짓는다는 건 비스포크의 가장 매력 중 하나이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옷'이라는 부분에서 유대감이 형성되며, 번치북이 아닌 빈티지 패브릭으로 들어가면, 이 같은 부분은 더욱 강조될 수 있다. 그리고 테일러가 지향하는 하우스 고유의 실루엣과 디테일을 경험할 수 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아울러 라펠의 너비, 라펠의 각도와 굴림 정도, 프런트 라인의 개방 정도, 주머니의 모양, 소매 단추 개수, 안감의 색상, 총장의 길이감, 소매 길이, 어깨 모양, 패드의 유무, 단추의 색깔, 숄더 라인의 각도 등 옷을 입는 사람의 취향을 한데 모아 하나의 옷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이다. 내가 맞춤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는 '예복으로 첫 맞춤 옷을 시작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이다. 평소 맞춤 옷을 입지 않던 사람이, 결혼식을 위해 예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맞춤 옷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예복인 만큼 마음먹고 적잖은 비용을 들이는 것일 텐데, 정작 시간에 쫓기거나, 비스포크에 대한 이해도 등이 부족하여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나는 이 같은 문제가 하우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낳은 결과이다. 한쪽(첫 맞춤을 시작하는 사람)은 맞춤 옷의 특성과 하우스, 테일러, 원단 등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고, 다른 한쪽(비양심 비스포크 샵)은 그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자사의 이익을 위하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납기를 빨리 빼기 위하여 그 정보를 갖고 악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웨딩플래너에 의존하여, 하우스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출발부터 실패할 가능성을 안고 시작하는 셈이다. 그들이 줄곧 강조하는 '수제', '반수제', '패키지' 등과 같은 단어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그렇게 예복으로 처음 비스포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맞춤 옷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된 하우스를 가는 것이 맞다. 내가 하우스 소개 글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예복을 맞춤으로 진행하고 싶다면, 적어도 한두 번 정도 경험치를 쌓은 뒤에 하는 것이 좋다. 처음 할 때 보이지 않거나 느낄 수 없던 부분이, 그다음 경험에서는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안목이 오롯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적어도 20개 이상의 기성 브랜드를 입어볼 필요가 있다'이다. 남성 클래식이라는 범주 내에 있는 브랜드는 수 백 개가 있겠지만, 그중 내가 알거나 입어본 브랜드는 아마 절반도 안 될 것이다. 입어본 옷보다, 입지 않은 옷이 더 많다는 얘기다. 한때 기성은 링자켓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시기가 있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링자켓보다 나에게 더 잘 맞는 브랜드는 얼마든지 있었다. 단지 그땐 그걸 몰랐을 뿐. 물론, '나에게 잘 맞는' 기성 옷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충분히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잘 맞는 기성 브랜드와 사이즈를 알고 있으면, 언제든지 실패하지 않고 옷을 구입할 수 있어서다. 적어도 잘 맞는 기성 브랜드를 찾기 위해서는 20개가 넘는 브랜드의 옷을 입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한 브랜드 내에서도 다양한 라인 또는 패턴이 존재한다. 링자켓의 경우 널리 알려진 269를 비롯하여 184, 253(254), 271 등 다양한 패턴이 있다. 특정 패턴 하나만 입고, '이 옷은 나에게 안 맞아'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패턴과 다양한 브랜드 옷을 입어보며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 여정은 의외로 단순하다. 많이 입어보며, 그때 느낀 경험과 생각을 기록해 두는 것이다. 브랜드 내에서도 드랍수나 사이즈 감이 다를 수 있는 만큼 정사이즈와 한 치수 크거나 작은 사이즈를 다 입어보는 것이다. 나의 경우 평소 세컨스퀘어에 방문할 때 처음 보는 브랜드가 있으면, 무조건 한 번씩은 입어보았다. 그렇게 입어본 브랜드만 30개가량은 될 것이다.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기성 옷을 들일 때마다 예전보다 훨씬 높은 만족도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잘 맞는 기성 옷은 비스포크보다 더 높은 만족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