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는 '영감'을 주는 톰의 옷차림
영화 <500일의 썸머>는 남녀 간의 만남과 이별 회상을 그리고 있지만, 플롯을 더욱 부각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는, 영화음악과 캐릭터의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음악은 그간 보았던 영화 가운데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좋다고 확신하며, 극 중 역할의 스타일 또한 단순하게 '옷을 입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 배역의 설득력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썸머의 스타일도 그렇겠지만, 톰의 스타일도 배역에 몰입할 수 있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스타일에 대한 설명에 앞서 먼저 톰 핸슨에 대한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톰은 로스엔젤레스에서 카드 문구를 제안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다.
이쯤 되면 그의 전체적인 스타일은 최근 확산하는 '비즈니스 캐주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톰의 패션은 일반적으로 불리는 비즈니스 캐주얼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비즈니스 캐주얼은 캐주얼적인 요소에 포멀함을 가미한 것 정도로 볼 수 있는데, 톰의 착장은 보다 '자유분방한' 느낌이 강하게 나타나서다. 이는 회사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반적인 회사가 아닌 창의성을 요구하는 카드 문구를 제안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보인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정서가 다른 것도 또 다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착장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있다. 무채색 컬러의 셔츠를 비롯하여 니트 베스트 혹은 가디건과 슬림타이이다. 셔츠+니트 베스트+타이의 조합을 기본적으로 재킷을 조합하는 주로 볼 수 있다. 회사에서 근무할 때는 항상 타이를 착용하는 것으로 보아 톰 나름대로의 비즈니스 캐주얼을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컬러의 니트 베스트를 착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니트 베스트를 활용하는 남성을 자주 볼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입던 교복 영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성인 남성이 꺼려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마치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비칠까 봐. 다행인 것은, 클래식 패션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증가하면서 가을과 겨울에 페어아일로 된 베스트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는데, 더불어 다양한 컬러의 니트 베스트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톰은 데님 팬츠를 입지 않는다. 톰은 영화 속에서 대부분 치노 팬츠와 트라우저를 입고 있다. 아울러 상술한 것처럼 대부분의 아이템이 무채색인 경우가 많다. 이는 톰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슈즈는 영화 내내 퓨마의 슈즈를 신었는데(심지어 수트를 입을 때도 이 신발을 신는다.) 정확한 모델명은 잘 모르지만, 조셉 고든 레빗이라서 잘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톰은 총 세 벌의 수트를 착용한다. 첫 번째는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서 착용한 수트이다. 연베이지 컬러의 코듀로이 소재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톰의 착장이라고 생각한다. 썸머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수트의 컬러처럼 썸머에 대한 톰의 마음도 기대감으로 인해 다시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두 번째는 썸머의 집에 초대받을 때 착용한 차콜그레이 컬러의 수트이다. 재기발랄하게 스니커즈를 신고, 플라워 패턴의 셔츠와 슬림타이를 매치했다. TPO에 맞는 착장이다.
마지막으로는 벤치에서 썸머를 만날 때와 엔딩 장면에서 인터뷰에 참석하기 위해 착용한 다크네이비 컬러의 수트이다. 톰이 착용했던 수트 중에서 가장 포멀한 아이템이다. 이 같은 수트 차림에서 레지멘탈 타이와 페이즐리 타이를 각각 매치했는데 인상적인 착장이었다. 수트를 착용한 톰의 모습을 보며 썸머는 "수트 입은 모습이 멋지고, 샤프해 보여"라는 대사를 친다.(안타깝게도 그간의 톰의 모습은 썸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톰은 썸머의 모든 것을 좋아했는데...) 어쨌든 당당해진 톰(스타일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건축가로서의 시작)의 모습은 잘 지내고 있음을, 일종의 간접화법 방식으로 썸머에게 전하고 있다.
엔딩 장면에서 인터뷰를 위해 면접장을 찾은 톰의 착장에서의 화룡점정은 바로 헤어스타일이다. 처음으로 머리를 위로 올려 세팅했는데, 이 모습이 마치 영화 <인셉션>의 아서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 씬을 통해 앞으로 당당히 건축가로서의 성공과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을 연상하게 한다. 이처럼 톰의 비즈니스 캐주얼은 그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톰의 착장을 조금 더 포멀하게 스타일링한다면 실생활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스타일이다. 나는 옷을 입는 데 있어 특별한 공식이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취향을 나에게도 입혀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자신만의 스타일이 정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캐주얼이 어렵다면, <500일의 썸머>의 톰처럼 입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