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돌고 돈다'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하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을 보았다. 그간 여러 번 보았던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늘 볼 때마다 새롭다. 벤자민의 상황, 그리고 옷차림, 당시의 시대상까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특히 영화에서의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고는 한다. 대학 졸업 후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벤자민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마치 예전 나의 모습과도 적잖이 비슷해 보여서다. 예전에 상황이 벤자민에 투영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많이도 닮아있기에 크게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옷차림에 관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졸업>을 보면서 벤자민의 복식을 통하여, 1960년대 후반의 남성 더 정확히 말하면 20대 미국 남성의 프레피 룩을 오롯이 엿볼 수 있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아도 벤자민의 착장은 괴리감이 전혀 없다. 벤자민의 착장은 전형적인 아메리칸 캐주얼과 프레피 룩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프레피 룩의 시초가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영화에서 벤자민은 동부의 대학을 수석 졸업하는 인재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고향인 캘리포니아로 돌아오는 장면이 영화의 오프닝으로 삽입된다. 첫 장면부터 벤자민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잘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컬러의 옥스포드 셔츠와 레지멘탈 타이를 매치하고, 재킷은 울과 헤링본 등의 소재로 된 자켓을 착용한다. 프레피 룩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착장이다. 팬츠는 바지는 곧고 좁은 형으로 앞주름이 없는 노턱 스타일로, 밑단에 턴업이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복사뼈 위로 올라오는 길이의 팬츠를 착용하고 있다. 클래식 복식의 바지 형태를 주로 보면 턴업과 모닝컷 등을 통해 밑단의 브레이크를 최소화하는 디테일을 사용하는데, 60~70년대의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남성들도 대부분 브레이크가 없는 길이감의 바지를 착용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멋스러운 옥스포드 셔츠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다. 벤자민은 다양한 컬러의 옥스포드 셔츠를 착용하는데, 타이와 함께 때로는 노타이로 자유분방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연출한다.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남성복 브랜드에서는 옥스포드 셔츠보다는 드레스 셔츠 위주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 옥스포드 셔츠는 대학생 등 청년의 전유물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다. 최근 들어 몇 년 사이에 Drake's와 Brooks Brothers의 영향으로 옥스포드 셔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이 확산하며, 대중화가 이뤄진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옥스포드 셔츠가 정말 매력적인 아이템이며, 굳이 프레피 룩이 아니더라도 효과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196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자켓의 경우 사이드 벤트보다는 센터 벤트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센터 벤트는 전형적인 미국 복식의 디테일로 분류되는데, 간간히 노벤트가 보일 뿐 유럽식의 사이드 벤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같은 부분에서 디테일의 차이라고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엔딩 장면에 벤자민이 착용하고 있는 사파리 자킷에 대해서 언급해 보고자 한다. 항상 깔끔한 차림만 추구하던 벤자민에게 다른 스타일의 복장을 착용했던 장면이 바로 후반부와 엔딩 장면이다. 일레인에게 달려가는 벤자민의 장면에서 자유분방하면서도 격식이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최근 국내 비스포크 씬에서도, 드레스 다운 기조에 맞추어 사파리 자켓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기업의 복장 자율화와 맞울려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는 바이다. 결과적으로 <졸업> 속 복식은, 2021년 현재에 대입하여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이처럼 <졸업>은 '패션은 돌고 돈다'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끔 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