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기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영화 <스포트라이트>
계속 파헤쳐야죠. 그게 누구든 간에
<스포트라이트>는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담담히 전달한다. 무얼 더하는 게 아닌, 왜 기자가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지, 기자의 사명감이 무엇인지. 움직임과 대사로 묵묵히 읊조린다. 마치 기자가 지향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정답을 말하는 것처럼. 기자로 지내며 매일 발제를 하다 보면, 캡은 물론 데스크가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명 기삿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취재에 들어간 뒤 수확물을 얻고, 기껏 발제를 했는데, 캡과 데스크는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며, '킬' 시켜버린다. 적어도 현장에 있는 내가 취재한 사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데스크는 무조건 '아니'라고만 반복한다. 답답하고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들에 비해 연륜이 부족하며, 시야가 좁은 탓이다. 데스크는 단발성에서 그칠 수 있는 단순한 현상을 뛰어넘어 정책과 제도의 문제점, 조직 내부의 관습과 관행을 파헤치라고만 한다. 그게 곧 사회를 바꾸는 시작이 될 거라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영화에서 보스턴 글로브의 편집국장 배런과 스포트라이트팀 팀장 로비는 취재기자인 마이크보다 한 걸음 뒤에서 현상을 바라본다. 그들은 가해자 한 명을 폭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닌, 이 같은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쉬쉬하고 있는 조직 체계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한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많은 영화들이 조직과 시스템에서 발생한 문제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고 감정에 호소하는데 사실 이는 그저 단편적인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자극적이고 수용성은 좀 더 좋을지 몰라도 체계와 틀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기존에 언론을 다룬 영화들은 흔히들 이 함정에 매몰됐다.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 뽑고 관습과 관행을 없애도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조직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들춰내야 한다. 상대방이 반박할 수 없도록 일말의 여지를 줘선 안 된다. 결국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더 넓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영화는. 길고 긴 취재 과정에서 팩트 체크는 물론, 제대로 된 반론권 보장과 연이은 후속보도 준비까지. 언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섬마을 특유의 폐쇄적인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있는 우리네 지역사회가 그렇듯 보스턴 가톨릭 교구 역시 자신들을 위한 일종의 카르텔을 굳건하게 형성했다. 종교집단은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성역인 깨뜨릴 수 없다는 이유로.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입을 닫고 숨기기 일쑤다. 닫혀 있는 시스템을 들춰내고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스포트라이트팀은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진실 앞에 눈을 감았던 사람들과, 정보공개를 번번이 거절해 왔던 법조계까지.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던, 굳게 닫힌 문을 드디어 열어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언론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사주의 영향은 물론 돈으로 점철된 각종 이해관계, 아집과 곤조 등을 논조와 저널리즘으로 포장한 언론만 남아 있을 뿐이다.
SNS가 발달할수록 언론의 입지는 줄어들고,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기사들이 난무하면서, 독자들에게 그리고 국민에게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게 됐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기존에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국민들이 그대로 수용해 왔다면,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독자들이 기사를 검증하고 언론이 팩트를 조작하거나 입맛에 맞게 작성된 글을 걸러낸다. 독자들 스스로 게이트키핑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플랫폼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기능을 일부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언론이 살아남을 길은 오직 저널리즘에 있다. 그리고 그 정답을 영화 <스포트라이트>와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이 잘 보여주었다. 팩트를 있는 그대로 여과 없이 전달하고, 어젠다를 설정해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언론의 역할은 그거면 충분하다. 기본에 충실하자. 그리고 사안을 멀리서 바라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자. 오로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