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담기 위하여 생겨난 공간에 어둠이 들어차다
며칠 전 네이버에서 잠자고 있던 블로그 이용자들의 공간 활성화를 목적으로 '블로그 챌린지'를 한다는 공지를 내걸었다. 한창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기에 수많은 이용자들이 자신만의 공간에 일기를 썼다. 단문이든, 장문이든 분량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기장이 되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게 중요하였다. 종이로 된 일기장에 써야 하는 일기를, 싸이월드 공간이 대체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평소 안 쓰던 일기를 쓰는 사람도 자연스레 늘었다. 싸이월드가 몰락한 이후, 블로그가 이를 대체하였지만, 단순히 활자로 일상을 기록하는 공간으로의 완벽한 대체가 되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싸이월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품을 많이 들여야 해서다. 따라서 블로그에서 기록되는 일상은, 글보다는 사진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일종의 '사진일기' 같은 것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는 개인의 일상을 오롯이 글과 사진으로써 나타낼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블로그는 광고와 마켓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였다. 다행스럽게 진정성을 담은 글을 써주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이 계신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포스팅이 파생되고, 확산하는 계기가 이번 이벤트가 될 거라 생각이 되었다. 물론, 나의 경우 쓰고 싶을 때만 글을 쓰기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래도 잠들어 있던 여러 공간에 다시금 숨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다른 이웃들의 반가운 포스팅을 만날 수 있어서다. 그런데 별안간 이벤트가 종료되었다. 그것도 3일 만에. 당초 2주 동안 글쓰기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이벤트가, 일방적으로 중단된 것은 이용자를 우롱하는 처사와 다름없다고 여겨진다.
네이버 측은 조기종료에 대한 이유를 '어뷰징'이라고 밝혔다. 본래 취지와 다르게 네이버페이를 얻기 위하여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다. 어떤 행동이든,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반작용이나 다른 결과물이 발생할 요인은 늘 상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무 수행 과정에서 리스크관리는 기본이자 필수 요소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IT 기업인 네이버가 과연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의 결과는 과연 예상범위에 없었던 걸까. 만약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하여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순 없었던 걸까. 그래서 누구를 위한 이벤트였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선 이번 이벤트 시작 전에 블로그 이용자 가운데 네이버페이를 사용하지 않던 사람들의 경우, 이벤트 참여를 위하여 네이버페이 이용약관에 동의하였기에 손해 볼 것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네이버가 최근에 네이버페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건, 인터넷 좀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오죽하면 향후 네이버의 경쟁상대는 카카오가 아닌, '유통공룡' 쿠팡이라는 말이 나올까.
그간 10년 넘게 블로그에 글을 써 왔다. 블로그에 나의 주관을 담은 글을 써 오며,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고, 행복한 일도 많았다. 반면 의도치 않게 기분이 상하는 일을 겪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글 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 고마움과 적잖은 시간 동안 쌓인 정(情), 그리고 소중한 이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라는 공간에 환멸을 느껴 떠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네이버 블로그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현재 나의 주력 글쓰기 공간은 브런치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브런치는 진심을 담아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브런치북>을 낼 예정인 데다, 출간을 위한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는 만큼,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블로그의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차츰 그곳을 떠나게 될 것이며, 이와 비례하여 공간에서 표현되는 진정성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결국 블로그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공간이, 삭막한 어둠으로 들어 차는 것 같아 안타깝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