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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May 07. 2021

모두의 '홍반장'이던 김주혁, 그를 추억하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던 사람

오랜만에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영화의 제목처럼, 어디서든,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나타나는 배우 김주혁에 대하여 다시금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 김주혁.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드라마 <카이스트>와 영화 <YMCA야구단>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야구를 좋아했던 만큼 <YMCA야구단>에서 유학생 역할을 소화하던 그의 모습이 썩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05년 겨울, 그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통해서다. 그 해 겨울은, 군 복무를 막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터라, 여느 때보다 설레고 들뜬 마음이 가득하였다. 무얼 하더라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시기. 그래서 그때의 기억이 더욱 생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기에 보았던 작품이 <광식이 동생 광태>였다.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봤던 친구까지 기억이 선명하다. 영화를 보면서 인생에 의욕이 앞섰던 마음이 큰 만큼 7년가량 윤경에게 제대로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하던 광식이의 모습이, 당시에는 그렇게도 답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제발 광태의 절반 만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광식이는 전형적인 소심한 A형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스스로를 '연애계의 평화유지군'이라고 표현한다. 이같이 답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들었던 것도 광식이와 모습이 나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영화 말미에 광식이는 말한다. "인연이었을까? 아닌 건 아닌 거다. 될꺼라면 어떻게든 된다. 7년 넘게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그녀와 이루어질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바보짓들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그게 짝사랑의 본질이다. 이제 더 이상 바보짓 않는다"라고. '짝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굴레에서 벗어난 광식이를 통하여 나 역시 일종의 모멘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적잖은 모멘텀을 가져다준 광식이를, 그리고 그런 광식이를 연기한 배우 김주혁을 좋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를 기억한다. 그가 <광식이 동생 광태>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디올 옴므의 신발을 신고 나왔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구하기가 힘든 나머지 일본 야후 옥션을 뒤지고 뒤져 경매를 통하여 결국 손에 넣었던 순간을. 7년 만에 결혼식장에서 윤경이와 재회하던 장면에서 그가 입었던 자켓이 너무나 맘에 들어서 비슷한 패턴의 자켓까지 구입하던 나였다.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옷을 좋아하던 나에게 그는 롤 모델 그 자체였다. 옷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연기에서 나오는 감동과는 별개로 내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디올 옴므, 그리고 닐 바렛과 마틴 마르지엘라를 좋아한다던 그의 인터뷰를, 평소 지인들에게 옷 선물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던 그의 따듯한 마음 씀씀이와 고운 행동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광식이 동생 광태>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두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 속 그의 연기가 좋아서도 있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부른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는 '세월이 가면'을, <홍반장>에서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각각 불렀다. 노랫말을 한 줄, 한 줄을 읊조리는 그의 모습과 음성이 어찌나 마음을 아려오게 하던지.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서 마음이 더욱 아리다. 다시는 그의 연기를, 그의 노래를, 그의 패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렇게 쓰라린 일로 다가올 줄이야. 그는 내게 연기로, 노래로, 그리고 패션으로 수많은 모멘텀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청춘을 더욱 빛나게 해 준, 그를 아끼고 기억한다. 그래도 그가 출연한 작품의 제목처럼, 머릿속과 마음속에서는 언제든지 나타나 줄 거라는 걸 안다. 그는 모두의 '홍반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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