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익스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지난해에는 드레익스(Drake's)의 약진이 유난히 두드러졌던 해였습니다. 그래서 드레익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새해에 가장 먼저 드레익스를 화두로 꺼내 든 이유입니다. 사실 드레익스의 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장벽을 넘어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벽은 하나의 스타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취향을 가진 고객층의 대규모 유입이 이뤄진 것을 뜻합니다. 기존 클래식 패션을 추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메카지, 컨템퍼러리 등의 장르를 지향하는 유저들도 드레익스로 적잖이 유입되었습니다.
드레익스가 추구하는 토털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죠. 이 때문에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드레익스가 폴로 랄프로렌(Polo Ralph Lauren)을 대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드레익스의 흥행은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가장 먼저 들어보자면 드레스 다운이 확산하고 있는 시점에서 드레익스가 추구하는 방향이 잘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드레익스는 마치 지금의 이러한 모습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수년 전부터 브랜드에 무게를 덜어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어요. 여기에서 말하는 '무게 덜어내기'는 그들이 늘 견지해온 '지속 가능한 스타일'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드레익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상품군이 있었죠. 셔츠와 타이, 스카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특정 아이템을 내세우는 카테고리 브랜드가 아닌, 토털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만큼 소비자들이 주로 구입하는 품목도 다양하게 분포되고 있어요. 예컨대 코트와 자켓은 물론, 니트, 스웻셔츠, 베스트, 데저트 부츠, 비니, 선글라스에 이르기까지 정말 매 시즌마다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고, 소비자들은 거기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드레익스 도산점에서 판매되는 제품 재고가 없는 탓에 오피셜 사이트 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유심히 살펴보면, 도산에서 품절되는 제품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오피셜 사이트에서도 품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전 세계 드레익스 고객 가운데 한국 소비자들의 비중이 높다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드레익스를 추구하는 마니아층의 확산
드레스 다운 현상 가속화와 함께 드레익스가 새롭게 내세운 전략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지난해부터였던가요. 시즌별로 제품을 선보이던 것에서, 시즌 내에서도 컬렉션을 쪼개어 소개하고 있는데요. 계절에 맞는 제품을 하나의 큰 줄기를 유지하며 다양한 상품군을 선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새롭고 빠른 것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에게 이보다 좋은 소식이 없는 셈이죠. 대부분의 상품은 품절되면, 다시 입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만큼, 구매에 있어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폴로 랄프로렌처럼 드레익스의 신상이 출시되기만을 바라는 마니아층이 확실하게 형성된 셈입니다. 저는 이 같은 마니아 가운데 폴로 랄프로렌을 좋아하던 분이 많이 포함돼 있다고 감히 추론해 봅니다. 폴로 랄프로렌의 가격 정책이나 국내 직구 금지 등의 영향으로 드레익스로 갈아타는 것이죠.
여기에서 아웃렛 판매 가격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드레익스도 아카이브 세일을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를 하는 이벤트를 종종 하고 있어서요. 리테일가 기준으로 가령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드레익스 옷 엄청 예쁘게 나오는데, 폴로 살 돈으로 드레익스 사는 게 낫겠어"와 같은 생각이요. 저는 이게 잘 먹혀 들어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드레익스 같은 경우는 오피셜 사이트와 도산점의 가격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배송기간을 고려하여 공홈에서 구입하지 않고, 도산점에서 구입한 경우도 꽤 있습니다. 다만, 직접 방문하지는 않고 온라인으로만 구입해 왔습니다. 반면 폴로 같은 경우는 공홈과 국내 매장 리테일가 간 간극이 있는 편이죠. 저는 이러한 부분도 폴로 충성 고객들이 드레익스로 옮겨가는 데 한몫했다고 봅니다.
드레익스 특유의 탁월한 브랜딩도 빼놓을 수 없죠. 이제는 드레익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룩북을 비롯해 문화계 인사라든가 에임 레온 도르(Aimé Leon Dore)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내놓는 결과물이 바로 그렇습니다. 특히 최근의 결과물을 보면 클래식과의 거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2017년 드레익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이클 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겁지 않으면서도 캐주얼한 느낌, 그리고 신선하고 위트 있는 스타일을 지향한다"라고 말했죠. 그는 '드레익스를 클래식 브랜드로 볼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그렇다고도, 또는 그렇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왜 당시 그가 그런 뉘앙스의 답변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의 드레익스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엔 클래식 브랜드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캐주얼 영역에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죠.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요. 마이클 힐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포지션을 유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드레익스는?
드레익스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이유 또 하나를 덧붙여보면,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브랜드를 들여와 전개하고 있는 유니페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발사장'으로 불리는 유니페어(Unipair)의 강재영 대표님과 '탐스'를 국내에 소개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바지사장' 강원식 대표님은 국내 패션계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입니다. 영향력이 어마어마하죠. 두 분이 운영하는 '풋티지 브라더스'는 대표적인 패션 전문 유튜브 채널이기도 합니다. 저도 즐겨 보고 있고요. 드레익스를 국내에서 전개하는 만큼, 이 채널을 통해 드레익스에 대한 소개는 물론, 아이템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어요. 드레익스를 아는 사람은 더 관심 갖고 지켜볼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새로운 고객층으로 유입되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자사가 전개하는 브랜드 홍보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 드레익스 제품을 경험해 본 적이 없거나 도산점에 가보지 않던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만드는 일, 정말 쉽지 않아요. 저는 국내에 '풋티지 브라더스' 같은 패션 전문 채널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은 요원한 일이지만요.
현재 국내에서 도산점 뿐만 아니라 소나이 등의 편집매장에서도 드레익스를 들여와 판매하고 있습니다. 드레익스의 국내 인기를 생각해 봤을 때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제가 드레익스의 정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직구를 막지 않는 데다 현지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판매 가격, 그리고 연 1~2회 아카이브 세일 등을 봤을 때 드레익스의 인기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도산점 확장 이전 이슈로 오히려 더 날개를 달지 않을까 전망합니다. 그래서 만약 드레익스의 주식이 있다면, 저는 무조건 매수하지 않았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해봅니다. 물론 기존 클래식을 지향하는 고객층의 구매는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관측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모두를 다 아우를 수 없고, 지금의 스탠스가 오히려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한 계기가 됐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클래식 무드를 지향하는 아이템을 여전히 선보이고 있어요. 저도 액세서리를 제외한 드레익스의 제품은 그만 구입해야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룩북을 보면 또 마음이 혹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바로 역량이 아닐까 싶어요. 그들의 행보를 계속해서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여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진=Drake's Official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