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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Jan 09. 2022

어쩌다 기자단 간사가 되었습니다

사회부 기자로 살았습니다 <4>

사회부 사건팀 기자로 지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이슈가 발생했다. 뜻하지 않게 경찰서 출입기자단 간사로 추대된 것이다. 그간 간사를 맡아왔던 통신사 소속의 선배가 인사에 따른 부서 이동으로 후임자가 필요했는데, 나를 추천한 것이다. 그 선배는 개인적으로 나를 불러 "네가 간사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당시의 나는 간사를 맡을 만큼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선배, 제가 간사를 맡는 건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을 건네며 극구 거절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매일 새로운 기삿거리를 찾아내 발제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부담도 적잖은 상황에서 기자단을 대표하는 자리가 부담으로 다가와서다. 그런데 그 선배는 꽤 집요했다. 기자단을 대표해 출입처 측에 목소리를 낼 줄 알고,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이유를 들면서 나를 설득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설득당했다.


그렇게 선배의 권유에 따라 기자단 투표를 거쳐 새로운 간사로 추대됐다. 간사로 선출된 이후 회사 내에서 나의 역할인 발제에 대한 것보다, 타사의 선후배가 모여 있는 기자단의 간사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부분의 기자들은 출입처의 선후배와 매일 부대끼며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쌓는다. 오죽하면 회사 선후배들에게 하지 않던 개인적인 고민을, 출입처 선후배들에게 할 정도이니 말이다. 아울러 기자단 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는, 개인의 역량을 평가할 때 꽤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보도자료 또는 브리핑에 의존하지 않고 기민하게 정보력을 토대로 가장 먼저 발제해 타사를 물 먹이거나, 특유의 기획력으로 어젠다를 설정해 확산시키는 것들이다. 출입처 내에서 '저, 친구 잘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이 같은 평가는 여러 명의 입과 귀를 거쳐 곧 회사 편집국으로 흘러 들어온다. 회사 안이 아니라, 출입처에서 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을 모르지 않는 만큼, 간사가 된 이상 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출입하던 경찰서는 60개가 넘는 언론사가 등록돼 있었고, 출입기자만 해도 100명을 훌쩍 넘는다. 대충할 수 없고, 그래선 안 되는 자리였다. 전엔 몰랐는데, 간사가 돼 보니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게 의외로 많았다. 경무과를 대상으로 경찰 간부와의 기자간담회, 풀기자단 취재 일정 조율을 비롯해 보도자료 배포 일정(엠바고 포함) 및 브리핑 일정 공지, 공식적으로 배포하지 않는 건에 대한 내용 전달, 기자단 측 공식 입장 전달, 기자단 가입에 관한 사항, 기자단 모임 등에 대한 의사결정 등이다. 이 같은 내용의 대부분은 모든 출입기자가 속해 있는 기자단 단톡방을 통해 이뤄진다. 그렇게 사회부 기자로서, 또 출입기자단의 간사로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간사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속한 기자와 수많은 출입기자를 대표하는 기자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단독 보도에 관한 건이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공들여 사실관계를 파악한 건이 있어 단독을 내걸고 내보낼 수 있는 기사인데, 자칫 간사의 권한과 지위를 취재에 활용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단독 보도를 포기한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경찰 외부의 여러 취재원을 통해 확인된 사안이라도, 누군가는 간사이니까 취재가 가능한 기삿거리로 여겨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간사를 맡는 동안 사건과 관련한 보도는, 가장 먼저 취재했어도 단 한 번도 단독을 내걸고 기사를 내보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건은 출입처 측에 보도자료로 배포하라는 의견을 건네거나, 형사과 및 수사과 등 부서와 협의 후 해당 내용을 정리해 단톡방에 공지했다. 이런 나의 속내를 아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이처럼 간사가 되면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출입처의 특성이나 기자단의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기자단 간사는, 단독보도를 하는 기자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건 및 사고와 관련한 단독을 하지 못했어도, 부장은 그런 나를 퍽이나 기특해했다. 내가 간사를 맡는 동안, 때때로 외부에서 나에 관한 좋은 평가를 들어서였기 때문인 듯하다. 회사 밖에서 타사로부터 자기가 데리고 있는 후배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 나였어도 그러지 않았을까. '내가, 이 녀석을 잘 가르쳤구나'라는 생각도 들 것이고. 그렇게 기자단을 대표하는 간사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은 스스로를 한층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기자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기도 했다. 출입처 제도와 출입기자단 시스템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통해 다뤄볼 생각이다. 직접 경험해본 만큼, 속속들이 다 알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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