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기자로 살았습니다 <3>
사회부 사건팀 기자로 지내면서, 많은 관심을 두고 있던 것이 과학수사였다. 미제(未濟)로 남을 수밖에 없던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다양한 과학수사가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경찰의 수사 역량이 앞으로 어디까지 진일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과학수사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하였고, 이와 관련한 취재 역량을 기르고 싶은 마음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교육 참가 신청을 부장에게 요청하기도 하였다. 내가 출입하던 경찰청과 경찰서 출입기자 가운데 과학수사 분야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고, 그 열정을 취재와 기사로 체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과학수사와 관련된 기사를 여럿 썼다.
거짓말탐지기에 관한 취재 및 보도는 그러한 열정이 행동으로 옮겨진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언론 보도를 접하다 보면,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실시하였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하지만 대중들은 거짓말탐지기가 어떠한 원리와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그 결과값은 어느 정도 신뢰 수준을 지니고 있는지, 증거로서의 결정적 효력을 갖고 있는지 등에 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런 의문과 물음에서 접근을 시작하였고, 거짓말탐지기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에 취재에 돌입하였다. 각 청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실시하는 검사관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검사관을 만나 거짓말탐지기에 A부터 Z까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고, 수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이에 앞서 거짓말탐지기에 대한 설명과 정의가 필요할 듯싶다. 거짓말탐지기(폴리그래프) 검사는 피의자 등을 대상으로 피의사실과 관련된 사항을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는 호흡파, 심맥파, 피부 전기 반사 등 일련의 생리적 변화를 측정하여 기록하는 검사방법을 말한다. 측정값을 토대로 분석을 실시하여 피의사실에 관한 답변의 진위 여부를 가려낸다. 예전에는 교통사고 등 단순 사고를 놓고 검사가 실시되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폭력과 성폭행 등 각종 형사사건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같은 검사는 인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상자가 동의를 한 경우에 한하여 실시할 수 있다.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이 억울함을 토로해 스스로 검사를 받겠다고 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의 권유로 피의자들이 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미성년자를 상대로는 가급적 활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의 신뢰도를 90~95%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검사가 모든 진위를 가려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아직까지는 법정에서는 결정적 증거가 아닌 참고자료 정도로만 쓰이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 수사 과정에서 진술에 영향을 미치거나 새로운 수사 단서가 확보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여기에 거짓 진술로 일관하던 피의자가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앞두고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껴 범죄사실을 자백하거나, 검사 도중 또는 검사 후에 사실을 털어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검사관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대상자의 동의를 얻은 후에야만 진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용의자 입장에서 검사를 거부하였을 때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될 수 있어서 응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범죄 사실을 확인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법정에서는 무엇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주요 선진국의 과학적 수사기법의 도입과 활용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우리 대법원의 경우 거짓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의 증거능력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며, 수사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검사 결과의 '정확성과 합리성', '과학적 신뢰성'이 보장되어야만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사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함으로써 수사기관으로서는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굳혀 수사를 계속하거나 수사의 방향을 전환하는 등의 장점을 말한다. 피의자로서도 자신의 진술에 관해 진실성을 확인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상자의 검사에 대한 동의가 있는 경우에 수사기관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활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견해를 제외하고는, 모든 학설들도 거짓말탐지기의 사용을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원이 요구하는 전제 조건인 정확성과 합리성, 과학적 신뢰성을 모두 충족하기에는 아직까지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취재 과정에서 검사관에게 마지막 물음을 건넸다. "거짓말탐지기 검사관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이었다. 검사관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피의자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고 나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때"라면서 "그럴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실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며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선 안 되는 만큼, 늘 중립적인 입장에서 절차와 기준에 맞추어 검사를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힘줘 말하였다. 사회부 기자의 시각에서 거짓말탐지기를 활용한 조사는, 다양한 수사방법 가운데 하나이며, 비록 법정 증거 능력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일련의 수사 과정에서 유의미하게 활용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만, 앞에서도 강조하였듯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로 인하여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선 안 되는 만큼, 현재로써는 결정적 증거가 아닌,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