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MMCA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불온한 데이터>를 보고서, 이미 아득히 지나버린, 주니어 기자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열정이 곧 전부라고 생각하였던 저 연차 시절엔 기자정신과 그에 걸맞은 필력으로 정론직필의 길을 걸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따라서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그저 선배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면 될 것이라고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연차라 쌓이며 깨닫게 되었다. 진짜 인정받는 기자가 되려면 기자정신이 투철하거나,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빠삭해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출입처에서는 연차에 상관없이 새로운 정보를 잘 캐치하는 기자가 대우를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아는 만큼, 제목에 [단독] 타이틀을 붙인 기사를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 있어서다. 그게 곧 실력이다. 글을 잘 쓰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제아무리 필력이 좋아봤자 남들이 모르는 정보가 없으면, 기사를 쓸 수 없다. 부속물도 만들 수 없다. 남들이 다 아는 사실이나, 보도자료를 가공하여 쓰는 건 의미 없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 낭비다. 그건 기자가 아니다. 단순히 받아쓰기를 하는 기계일 뿐. 요즘엔 어떠한 데이터만 주어지면, 로봇이 실시간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그리하여 회사에서, 출입처에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없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친구, 잘하더라'는 이야기로 계속 회자되고 싶었다. 그래서 출입처에서 미친 듯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하루에 수십 건의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 상에 등재되어 있는 자료를 뒤져보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그렇게 '나만의 정보'를 확보하여 나갔다. 10매가 넘는 분량의 기사가 아닌, 2~3매 정도의 단신이라도 남들이 모르거나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이면 데스크에 보고하거나 취재 메모를 올렸다. 그렇게 취재 승인이 떨어진 뒤 나만이 알고 있는 내용을 기사를 써서 내보낼 때의 감정은 어떠한 단어를 써도 적당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희열과 전율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그렇게 출입처와 타사 기자들이 잘 모르는 내용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모두가 나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아침에 출입처에 출근하면 타사 선배들로부터 '오늘은 뭐 쓸 거냐'란 말을 듣기 일쑤였다. '뭐, 없어요. 만날 똑같죠'라고 둘러댔다. 후배들도 '선배, 기삿거리 있으면 하나만 주세요'라고 말을 걸어온다.
어느 시점부터 출입처 홍보담당관실 담당자와 실무부서 담당자로부터가 연락 오는 횟수가 늘었다. 그간 내게 관심도 없던 타사 선배가 밥이나 술을 먹자는 말을 자꾸 건넨다. 심지어 나를 아예 모르는 어떤 사람은 평소 친분이 있는 부장을 통하여 내용을 전달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했다. 여기에 출입처 동향을 정리한 카톡 메시지가 타사 선배들로부터, 후배들로부터 전달되기 시작했다. 어떤 선배는 이미 보도된 내 기사를 바탕으로 따라가는 기사를 썼다. 그런가 하면 나의 취재자료를 남들 모르게 별도로 요청하기도 했다. 그제야 알았다. 데이터가 곧 권력이라는 걸. 인정받으려면,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걸. 이 때문에 뛰어난 필력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는, 정보 습득에만 열을 올렸다. 5년가량 기사를 쓰면서 살았어도, 글을 쓰는 능력이 크게 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직 정보에만 매몰된 나머지 다른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불온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지나서 하는 얘기지만, 그땐 내가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면서. 조금은 후회된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지나간 시간을 이렇게 복기하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더불어 지난 시간의 과오를 다시금 곱씹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불온한 데이터> 전시에 고마운 마음을.